‘꿀잠 쉼터’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조합 핑계 대는 영등포구청, 대책 마련은 쏙 뺀 재개발조합

2021-11-04     김수나 기자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사회공동체적 공간인 꿀잠 쉼터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

꿀잠 쉼터는 비정규 노동자들과의 다각적 연대를 위해 2016년 설립한 사단법인 꿀잠이 각계각층의 지원으로 2017년 3월 낡은 건물을 사서 마련한 공간이다.

100일 동안 노동자 등 연인원 1000명이 리모델링 공사에 참여했고, 2017년 8월 완공한 건물에는 쉼터와 숙박, 전시 및 문화교육을 위한 공간 등이 마련됐다. 한 해 평균 4000여 명에 이르는 이용자들이 다양한 사회문화적 소통과 연대를 나눠 왔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이하 꿀잠대책위)은 4일 서울시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재로서 꿀잠 쉼터는 공존하고 존치돼야 한다”면서, “삶의 공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존치와 재개발을 함께 반영한 주택재개발 정비계획”이 마련돼야 하고, 영등포구청장은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꿀잠대책위는 “꿀잠 쉼터는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형태로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문정현 신부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꿀잠)

이어 “힘겹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사회활동가들이 몸이 아프면 쉬고, 밥도 먹고, 빨래도 하는 등 언제든 찾아오고, 더불어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활동도 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최초로 만들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적 쉼터”라고 말했다.

“종교계, 문화예술계, 법조계를 비롯한 전문가, 활동가, 노동자 등 시민사회 수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았고, 특히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 두 어른께서 서각과 붓글씨로 전시를 열어 그 수익금 전액을 내어 주는” 등 “꿀잠은 지어진 과정 자체가 한국 사회의 뜻깊은 역사”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투기와 욕망의 폭주 기관차”가 돼버린 부동산 재개발의 민낯을 꼬집으면서 “켜켜이 쌓인 지역의 역사, 공동체 안의 따스한 삶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공적 역할에 대한 무차별한 삭제를 자행했고 그 결과는 예외 없이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원래 살았던 원주민들의 추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장동 사태에서 보듯,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설 자본에게 돌아간 막대한 수익이라면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공재를 보전하기에 충분하다면서 “구청이 주택조합 핑계를 대는 것이나 조합이 꿀잠의 존치 의견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부당 이득을 가로채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공동체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구 도심가를 존치하면서 재생에 중점을 두는 도시재생사업이나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살리면서도 새로운 주택과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재개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지역 공동체와 공공재를 파괴하는 재개발에 반대하며 영등포구청장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사진 제공 = 꿀잠)

꿀잠이 있는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2구역은 2009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재개발 사업 추진이 장기간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러다 꿀잠 쉼터가 개소한 다음 해인 2018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공개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해 3월에는 재개발조합이 설립되면서 재개발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에 꿀잠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 대응팀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재개발조합 설립 뒤 이어진 몇 차례 간담회 등 소통 과정에서 영등포구청과 재개발조합은 꿀잠 쉼터의 공공적 기능을 인정했고, 공간을 존속하려는 꿀잠의 입장이 사업계획에 반영되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영등포구청은 꿀잠 쉼터의 위치 상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대토(공공개발로 수용될 땅에 대해 현금 대신 개발 이후 땅으로 보상하는 제도) 등 실현 가능한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꿀잠과 충분히 소통하고 조합과도 협의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27일 재개발조합이 공시한 정비계획 변경조치 계획안에는 대안은 물론 꿀잠의 존치 의견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명시되지 않은 채 현재 계획안의 최종안에 대해 토지 소유주 등의 동의를 받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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