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달리타스는 해방입니다”
[인터뷰] 광주대교구 김정용 신부 ‘하느님 백성의 대화’
10월부터 2년간 열리는 세계 주교시노드(세계 주교대의원회의)가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시작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황 요한23세가 제시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시 불러낸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는 교회 각 구성원들에게 아래로부터 백성 모두에 이르는 합의, 그것에서 비롯된 교회 쇄신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교회 구성원들과 각 교구는 시노달리타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이를 제대로 알리고 실현하기 위한 시도를 해 왔다.
이 가운데 광주대교구는 지난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통해 ‘시노달리타스’를 직접 체험하고 맛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광주대교구는 ‘3개년 특별 전교의 해를 위한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교회에 대한 엄중한 성찰과 함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에 답하기 위한 것”으로, “세상을 향한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교구)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묻고, 함께 고민하며,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과 전 교구민이 다 함께 모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로 먼저 평신도, 수도자, 사제 대표 각 14명, 총 42명이 참여했다. 5월 1차 대회에는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이라는 주제에 따라 “세상을 위한 교회, 쇄신하는 교회” 두 차원의 대화가 이뤄졌다. 이를 구체화하는 10월 2차 대회에 앞서서는 대화 주제 선정을 위해 교구민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 결과, 1차 대화 주제였던 '세상을 위한 교회, 쇄신하는 교회'에 맞는 개별 주제로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어려운 이를 찾아가는 교회,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 세상과의 소통, 교회 지도자의 모습 성찰" 그리고 "소통하는 교회, 쉬는 교우에 대한 관심, 사제 쇄신, 신자 재교육, 젊은 교회 지향" 등이 선택됐다.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는 교구의 ‘3개년 특별 전교의 해’(2020-22)의 의미를 보다 뜻깊게 지내기 위해 기획위원회가 사제단 연석회의 등을 넘어 수도자와 평신도까지 참여하는 자리를 제안하면서 이번 대화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화의 시작은 교구의 사목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모두 참여해 의견을 나누는 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었다. 그렇게 구성된 지구장 사제, 청년, 수도자, 여성 평신도, 수도자 42명이 작은 ‘시노드’를 이뤄간 셈이다.
김 신부는 두 차례 진행된 ‘하느님 백성의 대화’ 결과는 일종의 기본 매뉴얼, 예시로서 교구 각 공동체에 제공되고 공동체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더 다양하게 응용, 활용되면서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구 사목평의회 등이 있지만 개별 공동체에서는 실질적이지 않습니다. 의견수렴 과정도 대체로 형식적이죠. 지속적인 소통과 논의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과 인식에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목평의회에서도 각계각층의 대표자들이 지속적으로 논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요. 또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공유를 추구합니다.”
김정용 신부는 이번 하느님 백성의 대화 과정과 그 결과 도출, 공유 방식은 하나의 예시이며, 세계 교회와 교구의 흐름에만 일치한다면 각 공동체 안에서는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하나의 모델을 적용, 실행해 보면서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대화하는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의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직하달식 소통, 전달은 대체로 긍정적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사제들도 교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통문화가 스며들어야 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사목 계획을 세우고 사목현안을 논의하는 구조,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의지를 갖게 됐습니다.”
"시노달리타스, 당연하고도 쉬운 일"
김정용 신부는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는 “교회의 품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동식별과 대화는 결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오히려 편리하고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
김 신부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결정을 사제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는 것보다 논의도 결정도 함께 하고 책임도 함께 진다면 무게도 분산될 뿐 아니라 공동체 자체도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현재의 교회 구조 안에서 정말 쉬울까. 본당 공동체 경우는 어떨까?
“시노달리타스의 틀에서 들여다본다면, 지금의 본당에는 사제, 사목평의회, 신자 사이의 관계와 운영을 달리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소공동체, 구역과 반이라는 촘촘한 의견수렴 단위가 있어요. 그것을 이용해서 신자들 의견을 듣고 모으는 구조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목회는 본당 운영을 돕는 전문적 실무자 그룹이랄까요. 대화를 위한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 김정용 신부는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를 구현하려면 어떤 구조가 필요한지, 누구의 의견을 수렴하고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누구든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 실현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도 있는데, 그것은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함께 “결정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이다.
김 신부는 “지구장, 교구장 등 결정해야 할 자리에 있는 이들이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대화의 과정’과 ‘결정’이 조화롭지 못할 수도 있고 법적인 것과 성령의 방향이 충돌할 수도 있다”면서, “결정하는 과정과 순간이 성령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과정은 기계적 절차가 될 뿐이다. 결정자들이 때로 그 권위를 침해 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리더십이고, 리더십은 영성적으로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공동체 구성원들, 구조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또 소외된 목소리는 의식적으로 들어야 들립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 상상력의 부재가 긍정적으로 극복될 가능성은 있을까?
이에 대해 김 신부는 특히 사제들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처음에는 열기가 있었지만 규모를 늘리면서 오히려 일부 사제들은 시큰둥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하지만 1차 대화가 끝나면서 반 이상은 달라졌다. 신자, 수도자, 다른 사제들과 이야기하면서 변화가 일어났고, 실제 참여하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체험의 영역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용 신부는 이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도 기쁨을 느꼈다면서, 그 가운데 하나는 “교회 안에 무상성으로 갖춰지고 또 존재하는 이들이 은총의 선물이라는 깨달음이었다”고 고백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누군가가 봉사하고 일한다는 것들은 거의 무상성으로 이뤄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일반 영역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일이죠. 1차, 2차 대회를 하면서 계속 휴일에 모여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그런 요청에 응하는 참여자들 모두 그 부름, 초대 자체 그리고 응답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았습니다.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되는 그런 무상성들이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자체로 선물이죠.”
그는 “신자들 존재 자체가 무상성과 은총의 선물이다. 본당에 있는 사목회, 전례회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다”며, “그래서 더 나은 교회가 가능했다. 이러한 무상성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인간, 교회, 세상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그것이 교회 체험”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백은 광주대교구 주보에 실린 평신도, 수도자들의 소감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시대 흐름에 발맞춰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로서 ‘아래에서 위로’의 사목계획 추진과 사제, 수도자, 신자와 함께 의견을 조율하며 나아간다는 점은 획기적인 사건이며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번 첫 모임을 시작으로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존중하면서 함께하는 여정의 시간이 되길 고대합니다.... 열린 교회의 모습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평협 기획부장 한명호 율리아노)
“새롭게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찾는 여정에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함께 꿈꾸고,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며 가졌던 희망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되어 세상에 전해지길 기도합니다.”(바오로 딸 홍은영 수녀)
이러한 체험들이 그동안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외롭고 홀로였던 이들이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발견이고 위로가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에 김 신부는 “그렇다”고 답했다.
김 신부는 “초대하는 이와 응하는 이 사이의 환대였고, 회의적이었지만 함께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된 기쁨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것들은 사실 마땅히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나는 일이다. 이런 기쁨이 세상 속에서도 흐르도록 시노드 정신을 산다면, 더 나은 나, 더 나은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를 실천하고 사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공동체이기 때문”이라며, “원래 가지고 있어야 했고, 살아야 했던 것을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제는 본질을 찾아 회복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많은 당위와 근거, 전통은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가 마땅한 일이라고 가리키지만, 현재 교계제도와 그간의 경험은 많은 도전을 요청한다.
이에 대해 김 신부는 “특히 교계제도 안에서 사제의 역할, 사제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권위적 리더십이 시노달리타스로 서로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사제)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며, “그것이 세상 안에서 신뢰를 얻는 길이며, 권위적이고 배타적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시노달리타스가 기존 역할, 권위의 실행 위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시노달리타스는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다. 본질이란 하느님나라를 향한 길,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그러니 하나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쥐었던 것을 벗고 본질로 다가가는 새로운 여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본질은 홀로, 각자가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 안에서 일치가 이뤄지는 것”이라며, “일단 해 봐야 한다. 사제와 신자, 수도자들이 함께 시도하고 만들어 봐야 한다”고 요청했다.
“우리 역시 처음에는 어렵고, 사제들이 주도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됐습니다.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는 친구가 되고, 언어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영역을 만든 것이죠. 시노달리타스는 신나는 것이고, 해방이고, 집단 지성, 그리고 교회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체험입니다.”
김 신부는 자신 역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과 긍지를 느꼈다면서, “교회 구성원으로서 바로 이런 모습이 교회라는 체험을 했다. 개인적으로 그 모든 과정의 만남이 신앙을 행복하게 했고, 신났고, 기뻤다”고 다른 모든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해방과 기쁨, 신앙의 긍지를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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