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근원을 지닌 한 생명으로서

2021-10-29     편집국

(윌리엄 그림)

내가 아직 소년일 때, 나는 고생물학에 흠뻑 빠졌다. 고생물학은 이미 멸종한 아주 옛날 생명체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금 나는 낡은 인생이 되어 머잖아 없어질 순간이 가까웠는데, 이제 다시금, 멸종되어 화석으로 남은 생명체들이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고 성찰할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1885년에 길버트와 설리번은 영국 사회를 일본으로 가정해 풍자한 짧은 오페라 '미카도'를 발표했다. 등장인물인 푸-바는 자신을 “모든 것 위의 높으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역자 주: 미카도(Mikado)는 일본 천황을 가리키는 옛말로, 일본식 식재료를 얹은 서양 요리, 일본식 문양을 넣은 의복 등 서양에서의 일본풍을 말한다.)

“나는 아담 이전 조상의 후손으로 사실 아주 도도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내가 내 조상을 세포의 원형질'(원형질 내 전자전달계 구조물, protoplasmal atomic globule)까지 거슬러 간다고 말하면 이해할 것입니다."

푸바와 나는 사실 아주 먼 친척이다. 나의 조상 가계도 그 “원형질"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원형질”은 약 38억 5000만 년 전에 비롯됐다. 몇 달 차이가 좀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지구의 모든 생물은, 미생물과 박테리아(모든 생물체의 80퍼센트가 넘는다), 점균류, 균류, 식물, 동물,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원형질의 직계 후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바탕을 두고 방문 주제를 “모든 생명을 보호하자”로 정했다.

그리고 이 주제는 그 뒤로 일본 주교들에게는 거의 일종의 만능주문처럼 되었다. 주교들의 다양한 공적 의견에 늘 등장하고, 핵발전과 무기 반대를 포함한 여러 사회 문제에 입장을 낼 때 기본 틀이 되었으며, 교회 안 성학대 문제를 처리하는 지침을 만들 때도 적용된다.

“모든 생명을 보호하자”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교이거나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는 없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 신자인 나의 친구는 다른 생명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식물과 동물을 죽여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 식물과 동물들은 우리와 같은 “원자구" 수준의 조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오야마 상은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에 겸허히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내가 먹는) 나의 먼 친척들에게 일종의 윤리적 책임이 있다. 내가 프렌치프라이 같은 것을 먹을 때 말이다.

(이미지 출처 = UCANEWS)

우리는 지금 모든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위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일부는 과거의 무지 때문인데, 그때라도 하느님의 피조물을 존중했더라면 지금과 좀 달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이 알지만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존중이 없었던 결과,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폭풍, 기아, 질병, 오염, 분쟁, 산불, 난민 등 많은 재난이 곳곳에 확산되는 것을 감내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해 비롯된 것까지는 아니라도 더 확대됐다.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이미 모든 생물이 위기를 맞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지점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우리가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이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를 비롯해 지금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이 지구에서 적어도 6번의 대멸종기를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 원형질의 후손이다. 오르도비스기, 데번기 등. 그러니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같은 원자구에서 비롯된 모든 생물은 우리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같은 원형질에서 비롯된 생명의 한 지파가 어떻게 다른 지파들을 모두 쓸어 없애면서 살아남을지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곧 이 세계가 겪는 고통과 비탄의 소리에 입을 보태야 한다. 

우리 인류가 사라진다면, 모든 생명체에는 비극적인 손실일 것이다. 인류는 같은 것에서 비롯된 생명체 모든 지파 가운데 모든 생명의 진정한 원종, 즉 하느님을 인식하고, 존숭하며 감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지파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 인류만이 우리가 먹은 감자튀김을 위해서뿐 아니라 그를 대신해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 오직 우리만이 ‘찬미받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자리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취소하고 교황청 국무원장을 대신 보낸다. 100명이 넘는 세계 지도자를 비롯해 약 2만 5000명이 참석한다. (역자 주 : 문재인 대통령도 로마와 바티칸 방문에 이어 이 회의에 참석한다.)

나는 이 회의가 세계에 별 영향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미 25번이나 있었던 이전의 회의들처럼 말이다. 협상 끝에 합의가 나올 것이고 약속을 다짐할 것이고 선언이 인쇄될 것이다. 그에 따른 제대로 된 실천은 없을 것 같다. 이 자리에 모일 대표들을 실어 나르느라고 비행기들은 탄소를 내뿜을 것이고, 보고서를 찍어 내는 데 쓰일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는 찍혀 나갈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이 이 회의가 기후위기에 끼칠 주요 영향이리라.

다른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듯하다. 그나마 인류가 당할 고통을 최소로 줄이고 다른 생물종의 멸종을 최소로 하는 것을 포함해 이제 닥칠 새 현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외에는 말이다. 우리는 또한 피조물의 의식과 양심이 되어야 할 우리의 소명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그 어떤 미래가 닥쳐오든, 모든 생명체 가운데 더 나은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늦게나마 우리는 우리도 속한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는 미국 뉴욕 출신의 메리놀회 선교사다. 1973년부터 일본, 홍콩, 캄보디아에서 봉사해 왔으며, 오랫동안 <아시아가톨릭뉴스>의 발행인을 지냈다.)

(이 글의 논지는 필자의 의견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 편집진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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