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가사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우신연, 이주 가사노동자가 겪는 성적 학대 주제로 세미나 열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활동가 린두,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어려움 발표
26일 우리신학연구소가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이주민들의 현실과 어려움, 특히 성적 괴롭힘에 대해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발표를 맡은 린두(Erlinda Josheph) 씨는 '여성 이주 노동자 성적 학대에 관한 논의와 담론 확장을 위한 제안'을 주제로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몇 해 전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까지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는 국제가사노동자연맹(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 IDWF) 활동가였다. 국제가사노동자연맹은 2017년 지학순 상을 받은 바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7500만 명이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7퍼센트가 이주노동자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에 많이 있으며, 린두는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우선 왜 이주 가사노동자가 쉽게 성폭력(발표자는 sexual harassment라고 표현했으나, 기사에는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주는 행위’를 통칭하는 의미로 성폭력이라고 쓴다)에 노출되는지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문화도 정체성도 다르기에 고용주는 이들을 낮추어 본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와 비자를 잃을까 봐 성폭력에 저항할 수 없고, 피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말레이시아의 한 집안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한 26살 여성은 집주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집주인의 아내에게 알렸다. 그러나 아내는 이 여성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남편을 유혹했다며 때렸다. 21살의 다른 여성은 집주인이 돈을 주겠다면서 성관계를 요구하고, 밤에 방으로 찾아오는 괴롭힘을 겪어야 했다. 이들과 비슷한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것도, 공론화하기도 어렵다. 말레이시아에서 성과 관련된 것들은 금기하기에 공개적인 논쟁이나 논란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린두는 가사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성폭력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성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린두 씨는 이들에게 성폭력의 개념과 피해에 대한 대처 방안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노동과 달리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성폭력이 이뤄지기 때문에 공적으로 확장하기 어렵다. 성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벌어지며, 성폭력을 피해 집(일터)을 나오더라도 피해를 밝히기가 어렵다.
린두 씨는 말레이시아에 성폭력 관련 법안이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법에 대해 알지 못하고,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조차 투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달리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어렵게 노동청에 알려도 사회 전반에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기 힘들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교육과 성폭력 피해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긴급 피해 전화같이 이들이 필요할 때 외부에 알릴 소통 창구가 절실하다고 했다.
린두 씨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가운데 제189호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과 제190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에 비준해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ILO 핵심 협약 가운데 일부만 비준한 상태다. ‘차별 금지’와 ‘아동 노동 금지’에 해당하는 4개 협약에 더해 올해 4월, ‘결사의 자유’에 해당하는 2개 협약과 ‘강제 노동 금지’ 가운데 제105호 강제노동철폐 협약을 제외한 2개 협약에 비준한 상태다.
그는 한국에서 조선족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 같다며, 이들도 낮은 임금, 열악한 근무 조건,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주 사목을 하거나 이주민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이들을 많이 참여했다. 한 지역노동복지센터 활동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으로 일하는 이주여성이 이주 가사노동자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족이나 고려인이 이런 돌봄 노동을 많이 한다. 그는 남성 노인이나 그 자녀(아들) 의한 성적 학대가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 마찬가지로 이들도 피해를 밝히기 어려운 처지고,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파견업체에서 교육을 하지만, 성폭력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강사도 있다. 그는 또 한국에서 여성 이주노동자는 농촌에서 주로 일을 하며, 20-25살의 젊은 여성들이 주로 성폭력 피해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대응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주민 지원 단체에서 일하는 다른 참가자는 우리나라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 개선과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신학연구소의 다음 월례 세미나는 11월 24일,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원제 Radical Grace)를 보고, 그 주인공 가운데 크리스 수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