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주교가 바라본 2021년 한국 교회
올해는 지학순 주교(1921-93) 탄생 100주년 되는 해다. 원주교구는 그간 지학순 주교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학술제를 진행해 왔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원주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다시 빛으로’라는 주제로 지 주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지학순 주교의 생애는 한마디로 오늘날 사회 사목의 목표인 ‘통합적 인간발전’을 위한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학순 주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협동조합 운동 특히 신용협동조합에 주목했고, 이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도록 하였다. 지학순 주교가 주도한 협동 조직 운동은 지역 주민들에게 시혜적 방법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자신의 문제와 상황을 깨닫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병행했고 이는 참여 경제의 좋은 모범이며 통합적 인간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또 지학순 주교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관심과 대상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 주교는 기존 세상의 눈으로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지 않고,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70년대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고, 인권이 훼손되고 보호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학순 주교는 당시 한국 사회 위기 원인을 정보 통치, 부정부패 특권, 외세 의존에 있다고 보았다. 하여 박정희 독재정권의 정보 통치를 종식시켜 국민의 자유권을 쟁취하고, 부정부패 특권을 척결해 국민 생존권을 쟁취하며, 외세 의존을 단절해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사회를 구현하자고 선언했다.(1971년 성탄절 및 1972년도 사목교서) 결국 지학순 주교는 구속되고 군사정권에 핍박받았지만, 그 저항은 민주주의를 위한 온전한 인간발전을 위한 자기 헌신이었다.
나아가 지학순 주교는 한국에서 실천적 생태·생명 운동이 시작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지학순 주교는 장일순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70년대 협동조합 운동의 성찰적 방향을 고민하였다. 이 성찰과 고민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 기반한 산업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와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의 남용으로 인한 생태계 불균형에 대한 각성이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생명 농업(자연농법) 등에 주목했다.
이 고민의 결실은 1982년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른바 ‘원주보고서’라 불린다-로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근대 산업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자각과 모든 생태계의 협동적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 깨우침은 이후 농촌 유기농업(생명 농업) 운동과 도시 소비자운동으로 진행되어 가톨릭농민회의 생명 농업 실천과 생활 공동체 운동 그리고 한살림 소비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도농 직거래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지학순 주교의 생태적 자각은 무엇보다도 근대 산업 문명과 그로 인한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파괴적 현상에 대한 자각이었다. 이 자각에서 생명에 기초한 실천적 운동을 전개했고, 이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하는 생태적 회개와 통합생태론과 그 맥을 같이한다. 지학순 주교의 생태적 자각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경제와 기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생명과 생태의 세계관과 영성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cry of the poor)과 지구의 부르짖음(cry of the earth)을 듣고 만나며 응답하고자 노력했다.
지학순 주교가 보여준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인간발전을 위한 노력과 개방성, 협동조합 운동을 통한 참여적 대안 경제 시도, 독점과 독재에 저항한 정치제도의 개혁 요구, 그리고 산업 문명에서 벗어나 모든 생태계의 협동적 공존의 모색은 지금도 한국 교회에 유효하고 필요한 영성이며 실천지침이다.
개인적으로 가톨릭농민회 30년사를 정리하며 장일순, 박재일, 김영주 선생 등과 많은 생명 농업 실천 농민들을 만났다. 돌아보면 모두가 지학순 주교의 빛이었다. 세상의 빛은 영광과 화려함의 상징이지만, 세상에 온 빛(요한 1,9)은 죽음과 암흑의 공포 속에서 만나는 한 줄기 빛, 참 희망이다. 지학순 주교는 우리에게 “빛이 되라(Fiat Lux)” 말한다. 우리가, 교회가 오늘날 기후위기와 자본, 권력의 불공정 속에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 만나는 빛, 인간의 오만과 개발로 상처 입어 울부짖고 있는 지구의 상처를 치유하는 빛이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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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