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아이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2021-05-28     정민아
'쿠오바디스 아이다', 야스밀라 즈바니치, 2021. (포스터 출처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이 영화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가 만들어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노매드랜드’(베니스 그랑프리,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와 경쟁했으며,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우리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화를 보는 일은 아마도 매우 드물 것이다. 1년에 1편 정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인데, 어떻게 이런 수작이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 나라가 유고연방 시절, ‘아빠는 출장 중’, ‘언더그라운드’, ‘집시의 시간’을 만들어 칸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나라라는 점에서 이해가 될 것이다.(쿠스투리차는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감독이다.)

전쟁영화를 본다는 무거움 때문에 쉽게 이 영화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1992년에 발칸반도의 국가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당시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도 잠시 시선을 가져 보길 당부한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영화를 통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도시 스레브레치나에서 벌어진 1995년의 무시무시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이 왜 이런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전쟁은 왜 단 한순간도 없는 날이 없는지, 이런 거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주장과 거대한 명분만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스릴러적인 구도 때문에, 영화언어의 대중성이 역사를 사람들에게 얼마나 널리 기억하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스릴러 형식 안에 쌓아 올려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서사 진행과 몰입도가 높은 영화 표현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스레브레치나 대학살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공포를 날것 그대로 느낀다.

1995년 7월 11일 아침, 인구 3만의 마을을 세르비아군이 공격하자 보스니아 사람들은 유엔 평화유지군 캠프로 피신하기 위해 몰려든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지만, 전쟁 시 UN 통역관으로 일하는 아이다(야스나 두리치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캠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자, 이들을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UN 기지 바깥에는 보스니아인 2만 명이 운집해 있고, 운 좋게 캠프 안으로 들어온 수천 명은 음식과 화장실이 보장되지 않은 지옥 같은 공간에 숨죽여 있다. 그리고 다음 날 믈라디치 장군이 앞장선 무장한 세르비아 군인이 캠프로 진입하고, 이들은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여 어디론가 보낸다. 잠재적 군인인 남자들의 운명은, 세계가 모두 아는 바로 그 비극이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영화는 아이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남편과 아들들을 무수한 인파 사이에서 찾아내어 기지 안으로 데려오고, 세르비아 군인이 들이닥치자 찾을 수 없도록 숨긴다. 무장한 세르비아 군인의 시시각각 조여 오는 감시의 눈에서, UN 명단에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아무것도 없다.

스레브레니차를 구성하는 대다수 보스니아인들은 무슬림이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은 민족과 종교가 다르지만, 같은 언어, 같은 역사와 전통에서 살아왔다. 보스니아 피난민을 대표하는 한 여성 경제학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세르비아 군인이 대학 동창임을 알아보고, 지나가던 세르비아 젊은 군인은 선생님이라며 아이다를 부르고 근황을 묻는다.

세르비아군은 잔인했고, UN 평화유지군은 무능했다. 세계는 보스니아인들의 비극을 손 놓고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교사 생활을 하는 아이디의 차가운 얼굴은, 그녀가 그날 이미 죽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영화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복수로 향하지 않는다. 세르비아인이 특별히 폭력적이어서, 당시 네덜란드인으로 구성된 UN군이 특별히 문제적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의 악성과 폭력성, 세계외교정치의 실패, 혼탁하고 희망 없는 사회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 앞에 남겨진 과제 등 수많은 철학적 질문을 품고, 생존한 이들 하나하나의 귀한 얼굴을 스크린으로 마주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남자의 놀이다. 살인 기계에는 성별이 있다.” 그리고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전쟁은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들의 경기장이다. 전쟁은 가부장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구조를 보여 준다. 그 시스템의 미로 속에서 헤매는 여성을 그리려고 했다.”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이 일이 지금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홀로코스트, 광주, 보스니아, 홍콩, 미얀마.... 우리가 역사적 교훈을 통해 지금 일어나는 분쟁들을 지켜보고 연대해야 할 이유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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