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안으로 둔갑한 핵발전

서울 환경사목위, 가톨릭 에코포럼 “기후위기와 핵폐기물” 핵폐기물 처리장의 전제는 탈핵, 핵발전 증설 이유 아니다

2021-04-30     김수나 기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28일 '기후위기와 핵폐기물'을 주제로 가톨릭 에코포럼(온라인)을 열었다.

포럼에서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결정으로 핵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기후위기와 핵폐기물 문제를 짚었다. 부산교구 김준한 신부(남산동 본당 주임, 정의평화위원회 위원)가 발표를 맡았다.

김 신부는 먼저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생태환경 문제와 떼어 놓을 수 없는 핵발전에 대한 관심은 줄고 오히려 핵발전을 늘리려는 흐름을 지적했다.

찬핵론자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편승해 그 대안으로 핵발전을 강조하고, 이는 최근 월성 1호기 폐쇄를 두고 찬반이 크게 갈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석탄화력발전 중단 논의와 달리 미미한 발전량을 내는 핵발전소 하나 끄는 데도 이토록 논쟁이 과열”된 것은 핵을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여기는 찬핵론자와 기술지상주의자들의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핵무기와 핵발전은 결국 같은 것, 핵기술 그 자체 반대해야

김준한 신부는 교황 요한 23세의 1961년 회칙 ‘어머니요 스승’, 2007년 베네딕도 16세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립 기념 행사 발표 등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사용한다면 괜찮다는 인식이 담겨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도 핵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체르노빌 이후 2007년이면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반핵, 탈핵 운동이 활발했는데 교회는 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면서 “교회는 단 한 번도 핵발전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2013년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을 펴내고 세계 교회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핵기술 반대를 공식 천명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교회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한국 교회가 쓴 '핵기술'이란 표현은 핵무기나 핵발전은 결국 기술이나 위험성에서 같다고 본 것으로 반대해야 할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핵기술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핵 문제는 단지 핵무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인식으로 평화신학을 확장해야 한다”면서 “핵이 한 나라만이 아닌 온 인류, 우리 신앙의 문제라는 것을 증거하는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핵과 관련해 떠오르는 문제는 핵기술이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핵발전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해 핵발전소를 증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이동식 소형 모듈 핵발전 등이 기후위기 시대 탄소제로 방식으로 적합하다는 주장 등이 그 예다. 실제로 한국 국회, 미국 백악관 등도 핵발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서해를 사이에 두고 핵발전소를 집중적으로 짓고 있어 곧 핵발전소 보유량 세계 1위를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찬핵론자들은 핵발전을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하는 탄소제로 에너지로 제시하면서 핵을 유지, 강화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이는 빌 게이츠 같은 기술과학자들의 논리에 힘입는다. 빌 게이츠는 최근 새로 낸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핵발전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핵발전의 위험은 기술력으로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부산교구 김준한 신부(남산동 본당 주임,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정현진 기자

핵폐기물처리장 생기면 핵 발전소 더 지어도 된다?
지금도 방사능 오염은 계속....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 논의도 핵발전 강화의 근거가 된다. 

김준한 신부는 부안에서 시작된 핵폐기장 문제는 한국 반핵운동의 출발이자 밑거름이었지만 지금은 핵 산업을 유지, 증대하자는 찬핵론자들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탈핵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찬핵론자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핵발전은 화장실 없는 맨션(호텔식의 고급 아파트)’이라는 논리, 즉 핵폐기물은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찬핵론자들의 동력이 됐다. 이것이 핵발전소 건설 여부보다 더 심각한 문제 ”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계획 권고안이 나온 상태라 찬핵론자들은 핵폐기장이 지어지면 핵폐기물 처리에 여유가 생기므로 핵발전소를 더 지어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 신부는 핵폐기물 처리 불가능성은 탈핵 진영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만큼 탈핵 논의가 무르익을 때까지는 핵폐기장 건설을 유보해야 한다고 봤다.

현재 안전하게 운영된다는 핵발전소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기체 형태로 방출돼 전 세계 바다와 대기가 오염되고 있으며 이러한 오염은 되돌릴 수 없다.

문제는 모든 이가 똑같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뒤 당시 소련 정부는 수도 모스크바의 방사능 오염을 막기 위해 중간 지대에 인공 강우를 내리게 했다. 해당 지역 사람들은 3년 뒤에야 소개 명령을 받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도 부유한 이들은 해외로 피했다. 기후문제에서처럼 핵 참사에서도 피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김 신부는 “한중일 세 나라 어디라도 사고가 나면 기후위기와 핵 위험이 합쳐져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맞게 된다. 경계를 넘어서 한중일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면서 “핵은 인간 및 피조물의 생명과 양립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생명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의 전제는 탈핵

끝으로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불안감, 핵발전소 지역 주민의 삶 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김 신부는 핵폐기물처리장은 꼭 지어야 하지만 지질 상 안전한 부지 선정, 높은 기술력 확보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핵발전소를 계속 운영하고 새로 짓는 현 정책을 유지한 채 핵폐기물처리장을 만든다면 핵 진흥정책은 지속 가능하다는 위험한 명분이 돼 버린다”면서 “이대로라면 핵폐기물은 계속 늘어나고 핵폐기장 건설로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탈핵 먼저 해야 핵폐기물의 총량이 나오기 때문에 핵폐기장을 지으려면 탈핵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물질이 불안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한만이 아닌 전 세계 각국이 벌인 수많은 핵실험과 핵발전소 등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이 문제라고 답했다. 이 방사능 물질들은 자연 방사능 물질과 합쳐져 이미 연간 허용량을 훨씬 넘어선 수준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핵발전소 대부분이 가난한 지역에 들어서기 때문에 지역 주민은 건강뿐 아니라 보상금과 찬반 갈등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아왔다. 김 신부는 이웃에게조차 배척받으면서 반핵 싸움을 이어 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피폭자의 시선으로 핵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 해체 결정이 났음에도 실질적인 핵폐기물 처리 방안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는 고리1호기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김 신부는 “계획서 열람이나 공청회 내용을 봐도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없다”면서 핵폐기물 대책이 없는 만큼 바로 해체하지 말고 장기에 걸쳐 해체하는 가운데 핵폐기물처리장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을 마무리하며 백종연 신부(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장)는 “핵폐기물과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미래세대는 물론 우리 세대에서도 일어날 문제”라면서 “힘을 모아 신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가자”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가 주관하는 가톨릭 에코포럼은 하느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생태환경 관련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으로, 2009년 4월 처음 시작돼 이번이 39번째다. 매년 4번 이상 진행되며 누구나 무료로 함께할 수 있다. 이날 발표 자료는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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