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삶도 가능하다
기꺼이 유목적 생활을 선택한 한 여자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 영화를 기존 극영화를 감상하는 습관대로 대할 때 낭패를 보게 된다. 의지가 강한 주인공이 자신에게 던져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다가 극단적인 힘겨운 상황을 뛰어넘어 결국은 승리하는 서사. 그리하여 내면적 성장을 경험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흔히 보아 오던 주류 영화 스타일이다. 그래서 유목민의 땅을 의미하는 ‘노매드랜드’는 어쩌면 평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골든글로브 작품상, 영국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미나리’의 강력한 경쟁작이며, 감독인 클로이 자오는 이 영화로 수많은 역대 유일과 최초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수상, 오스카 최초 아시아계 여성 감독상, 작품상 후보.
주인공 ‘펀’으로 분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부르더가 3년 동안 취재 후 쓴, 은퇴 후 길 위의 생활을 선택한 이들을 취재한 책 "노매드랜드"를 읽고 이를 영화화 하기로 결심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미국 독립영화의 자존심인 조엘 코엔 감독의 동반자로서 이미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관록의 배우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아메리칸 드림 개척서사와 반대항을 그리며 여성의 시각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파헤치는 유목서사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논픽션 르포문학으로 이를 영화적으로 각색할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은 난제였고, 절실한 맥도먼드의 눈에 삶의 목적을 잃은 카우보이가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데오 카우보이’라는 영화가 들어왔다. 픽션과 다큐를 오가며 미국 한가운데로 들어간 이 영화를 연출한 이가 중국 출신 여성감독이라는 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맥도먼드가 제작하고, 클로이 자오가 연출한 ‘노매드랜드’는 그 어느 내부인보다도 적확하게 미국 내부로 들어가, 무너져버린 아메리칸 드림, 미국 자본주의의 회복할 수 없는 불평등, 길 위에서 자연에 흡수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려낸다. 홀로 떠난 60대 여성의 로드무비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니다.
그저 경이롭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광대한 미국 대지를 이동하며 포착한 풍경, 소박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음악과 고요의 소리, 주인공의 얼굴 주름에 배어든 쓸쓸하지만 희미한 미소가 주는 힐링과 연대의 감각, 극적으로 감정을 고양시키지는 않아도 하나하나가 정성스레 삶의 깊이를 담은 쇼트들의 배열,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 각자가 가진 자기만의 서사와 이유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시네마를 만난다는 것은 극장을 가는 커다란 기쁨이다. 팬데믹으로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에도 극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영화다.
펀은 2011년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석고공장이 폐쇄하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남편도 죽자 낡은 밴을 타고 떠도는 길 위의 삶을 선택한다. 이 일은 2008년에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다. 미국 정부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대출로 주택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부동산 버블이 꺼지자 집과 저축을 모두 잃었고, 이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를 몰고 왔다. 높은 학위, 전문 분야,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 노동해 온 사람들이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자 밴을 끌고 거리에 선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600만 명이 집을 잃었다는 이 시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펀은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강조하다. 맞다. 집이 없을 뿐, 자아를 잃은 것도 아니며 가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인 가정으로 생활하며 가족과 연락을 하고, 노동을 좋아한다. 그녀는 스스로 노동할 수 있으므로 ‘플랫폼 노동자’(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고용 형태로 일하는 자)로 살아간다. 이동하면서 아마존 물류센터나 캠핑장 같은 곳에서 임시로 고용되어 하루하루 삶을 이어 가는 수많은 노매드는 홀로이지만 느슨하게 연대하고 있다. 노매드들은 소유하지 않고, 교환하고 나누며, 낙천적이다.
2020년 아메리칸 드림은 산산조각 났고, 중산층의 안정이라는 환상도 붕괴했다. 펀의 여동생 돌리는 미국 초기 개척자들의 진정한 후예이자 전통의 계승자라고 언니를 칭찬하지만, 펀은 그런 전통을 이어갈 의미를 만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노매드라는 존재 자체는 미국 경제체제,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불합리성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소비문화에서 탈피하여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랑의 생명력은 인류가 오랫동안 유목적 생활을 해왔으므로 이것이 어쩌면 대안일지 모른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펀은 비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영화에 등장한 실제 노매드들은 다큐멘터리처럼 영화 안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노매드들은 당당하게 혼자 가야 하며, 그리고 또 혼자 지내도록 내버려지지 않는다. 영화는 희망과 동시에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정한 어른의 지혜를 전한다. 주름진 얼굴의 노매드들을 존경과 정성의 시선으로 그린 이 영화는 21세기 새로운 클래식이자 영화로 철학을 한다는 게 뭔지 이해하게 하는 걸작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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