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민주화운동과 분열된 불교 승려들
민주화에 따른 기득권 상실 두려워해
미얀마 쿠데타 뒤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미얀마의 불교 승려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지난 2007년에 승려들이 주도해서 벌어졌던 ‘샤프론 혁명’ 때에 비해서는 수가 적다. 샤프론 혁명이라는 이름은 승려들이 입는 승복 색깔에서 딴 것이다.
일부 승려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지지하고 일부는 민주화를 주장하는 청년들 편에 서고 있다. 제2 대도시인 만달레이에서 지난 13일에 한 승려가 죽은 뒤 승려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집단도 민주 회복을 위한 투쟁에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승려들은 어디에 있는가? 2007년과 달리 지금 불교 승려들은 시위를 주도하고 있지 않다.
타이의 창마이 대학의 미얀마 전문가인 애슐리 사우스 교수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2007년 샤프론 혁명은 승려들이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군부독재 하에서 (승려가 아닌)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소요의 원인에는 군부의 개혁 정책으로 보통 사람들, 특히 승려들을 먹여 살리던 이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던 것도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얀마에서도 불교 승려들과 시민사회는 긴밀히 연결돼 있다.(모든 불교 신자 남성은 특정 나이가 되면 일정한 기간 승려 생활을 하고, 날마다 식사를 마을로 나와 사람들이 주는 보시에 의존한다.)
미얀마의 주요 종족인 버마족 승려들은 다양한 정치 분파의 거리 시위에 주요한 참여자다. 예를 들어 2017년에 반 이슬람 시위를 주도했던 악명 높은 승려 위라투처럼 가장 극우적인 보수 민족주의부터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과 같은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두 승려가 참여한다.
하지만 승려들이 지켜야 하는 수도생활 규칙, 즉 비나야에 따르면 승려는 정치적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투표까지도 원칙상 금지된다.
사우스 교수는 “2007년은 예외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일 때문에) 지금은 버마의 ‘사회운동을 지도하는 승려들’이라는 클리셰, 거의 엽서 그림 같은 인식이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명상하는 생활로 돌아갔다.” (역자 주- 미얀마는 전에는 버마로 불렸으며, 버마족이 인구의 70-80퍼센트다.)
불교 승려들의 공동체인 상가(승가)는 정치적으로 단일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일반 사회와 같은 세대이자, 마찬가지의 사회적 신분이나 성향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 승려들이, 절 주지들을 포함하여, 군부를 지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며칠 전, 수도인 네피도와 양곤에서는 승려들이 시위를 벌이며 지난해 11월의 총선에서의 부정선거를 규탄했는데, 이는 군부의 공식 입장과 같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몇 주간, 지금 권력을 장악한 민아웅 흘라잉 장군은 주요 사찰에 대한 방문과 보시를 늘렸다. 그는 2월 8일에 쿠데타 뒤로 처음으로 국민을 향한 연설을 할 때는 군사정권의 첫 정책 가운데 하나로 “전국에 걸쳐 파고다를 공공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재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양곤의 슈웨다곤이나 만달레이의 마하루니와 같은 유명한 파고다(불교의 탑 모양 정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문을 닫고 있었다.
또한 흘라잉 장군이 쿠데타 직후 가톨릭의 양곤 대주교인 찰스 마웅보 추기경을 방문하고 의료장비를 기증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따라서 군부 지도부의 우호 공세는 가톨릭인의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 방문은 보 추기경이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고 “군부독재의 잔인함”을 규탄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988년의 반 쿠데타 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로서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자인 킨 마르 키는 “일부 승려들, 특히 불교-국가-군 일체체제로부터 혜택을 받았던 이들은 아웅산 수치 정부 하에서 위기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버마족은 불교인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우리는 심지어 학교에서 부처는 버마족이고 바라나시(또는 베나레스, 불교가 태어난 인도의 지명)는 버마에 있었다고 배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수민족들이 예전에 비해 더 부각되고, 도덕이 자유화되며 청년들이 전에 비해 종교 문제에 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승려들은 민족민주동맹이 이끄는 정부는 미얀마의 정체성과 불교적 특이성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고 믿게 됐다.
불교계 대학 지원금을 포함해 종교부 예산을 줄이려는 계획들이 추진되면서 이들의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이 글은 파리외방전교회가 파리에서 내는 <아시아 교회>(Eglises d'Asie)에 실린 것을 정리한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buddhist-monks-divided-over-myanmar-resistance-movement/9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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