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장인들이 필요한 세상
현대 과학은 우주의 나이를 138억 살로 본다. 이 나이를 1년으로 압축하면 흔히 빅뱅이라 말하는 불덩어리는 1월 1일 시작되었다. 우리 은하계는 3월 15일에 생기고 지구는 9월 1일에 만들어진다. 9월 15일에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은 11월 13일에 등장한다. 척추동물이 바다를 떠나 육상에 나오는 것은 12월 20일, 공룡은 12월 29일과 30일에 번성한다. 그리고 12월 31일 오후 4시 포유류가 등장한다. 밤 11시에 유인원이 진화하고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밤 11시 58분에 등장한다. 인류 문화는 11시 59분 40초에 번성하고 기술시대는 11시 59분 59.6초에 시작된다. 숀 맥도나 신부는 그의 책 "공동의 집"에서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우주의 놀라운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인간종이란 존재의 미미함이기도 하다.
12시를 0.4초 남겨 놓고 시작한 인류의 기술시대가 이제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그 이면의 생각은 인간중심주의였다. 서구 산업 문명 초기, 인간 이성이 최고라 생각한 인류는 밖에 있던 자연을 모두 남(대상, 객체)으로 보았다. 그러자 자연은 인간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대상이 되었다. 또 하나 생각은 기계론이다. 인간 마음대로 수리하고 교체 가능한 산업기계처럼 자연도 수리 교체가 가능한 거대한 기계로 보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나무를 베고, 자원을 캐내고, 마음껏 오염물질을 강물에 배출하며 고장 나면 고쳐 쓰자 했다. 본래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동산을 일구고 돌보는 존재인데(창세 2,15) 이 생각들로 돌봄이 사라졌다.
돌봄이 사라지자, 모두를 살릴 줄 알았던 산업 문명은 오히려 인류와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전 지구적 폭염과 한파가 몰려왔고, 파괴된 자연과의 거리 때문에 코로나19가 덮쳤다. 이 와중에 국토의 1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생태계 보전 지역인 설악산국립공원의 오색 케이블카 설치 추진을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손들어 주었고, 강원도는 신문마다 새해 인사로 친환경 명품 케이블카를 만들겠다며 광고한다. 친환경과 명품은 설악산 자체이고, 그 품에 사는 산양과 수많은 생물 종인데 그 서식지에 철탑을 꽂는 생태파괴 사업을 친환경 명품 케이블카 사업이라 홍보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약속했던 4대강의 자연성 회복 소식도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이미 출범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미사가 봉헌된다. 이미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 10개가 넘는 천연 보물 오름을 깎으면서 제2공항을 추진하려는 이들의 회개를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21년 새해를 맞아 평화의 길은 돌봄의 문화뿐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제54차 세계평화의 날 담화) 미미한 우주의 역사를 산 인간 종이, 산업 문명의 잘못된 가치관으로 이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지 못했다. 돌보기는커녕 너무도 빨리 지속해서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이 한파도, 기후위기도, 코로나19도 우리에게 왔다. 가난한 이웃들과 지구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산업 문명의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당위다. 새해,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처럼 산업 문명과 버리는 문화에 대항해 돌봄의 문명을 만드는 평화의 길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설악산과 제주 오름, 강물의 상처를 치유하고 돌보는 평화의 장인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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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