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복직, “35년 해고자 멍에 푸는, 진정한 명예회복”

서영섭 신부 등, 17-18일 복직 촉구 오체투지

2020-12-17     김수나 기자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박문진 지도위원(영남대의료원, 보건의료노조) 등 모두 4명이 오체투지 행진을 했다. ⓒ김수나 기자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씨의 복직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이 17일 진행됐다.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고공농성 227일 끝에 복직한 박문진 지도위원(영남대의료원, 보건의료노조) 등 모두 4명은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해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는 서울 남영동까지 5킬로미터 남짓을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이날 행진 시작 전 기자회견에서 서영섭 신부는 “35년 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권력기관의 개입으로 한평생 해고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온 김진숙 씨는 이제 곧 정년이고 지금 힘겹게 투병 중”이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이달 15일까지는 해결되기 바라며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오체투지를 했고, 오늘과 내일 더 절박한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한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김진숙 씨 복직은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면서 “국가 폭력, 잘못된 역사에 대해 국가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늘 강조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말했다.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단식이 진행되는 등 코로나로 모두가 고통받는 엄중한 시기에 가장 절박한 이들은 노동자라면서 안전한 일터와 해고자들의 복직을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6일에도 서영섭 신부는 부산역에서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본사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했다. 

이날 서영섭 신부는 "한평생 해고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온 김진숙 씨는 이제 곧 정년이고 지금 힘겹게 투병 중”이라면서 “오늘과 내일 더 절박한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한다”고 말했다. ⓒ김수나 기자

한편 지난 7일 개신교, 불교와 함께 김진숙 씨 복직 촉구 성명을 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시민사회가 김진숙 씨의 고단했던 삶을 기억하고 그의 복직을 촉구하는 이유는 여전히 한국의 노동 현실이 약자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이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이들이 노동 인권, 약자의 존엄을 위해 우리 대신 싸워 주었기 때문”이라고 17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주형 신부는 “예전에 비해 그나마 노동 현실이 나아진 것도 그런 불의함에 맞서 싸웠던 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불의에 맞서 저항하며, 약자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며 김진숙 노동자의 복직은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체투지 행진이 한국산업은행 앞에서 시작된 이유는 한국산업은행이 현재 매각 절차에 들어간 한진중공업의 주 채권단이자 법정 관리사로 김진숙 씨 복직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숙 씨 복직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방의회, 국회에서도 촉구된 바 있다. 해고 23년 만인 2009년 정부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김진숙 씨를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하고, 한진중공업에 복직 권고를 내렸다. 이어 지난 9월 부산시의회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조속한 복직과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정년을 15일 앞둔 상태에서도 복직이 이뤄지지 않아 종교계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조속한 복직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박문진 지도위원(영남대의료원, 보건의료노조) 등 모두 4명이 오체투지 행진을 했다. ⓒ김수나 기자

지난 14일 ‘김진숙 희망버스 기획단’(기획단)은 ‘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부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동일방직’, ‘반도상사’, ‘원풍모방’, ‘청계피복노조’ ‘YH무역’ 등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으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이 김진숙 씨의 즉각 복직을 외치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김진숙 복직은 김진숙 동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노동자의 본질적인 과제”라면서 “한진중공업, 산업은행, 정부는 책임을 절감하고 즉각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1978년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정명자 씨는 “노동자에게 진정한 명예회복은 해고당한 사업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서 “김진숙 동지는 다시 용접공이 되어 한진중공업으로, 저는 동일방직에서 솜을 틀어 실을 만드는 공정의 노동자로 되돌아가 경비들에게 저지당하지 않고 작업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다 우리 손으로 사직서를 쓰고 당당하게 정문을 내 발로 걸어 나오는 것이 진정한 명예회복”이라고 말했다.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소송이 최종 패소하고 세 살 난 아이를 재우고 세상을 떠난 여승무원의 무덤에 몰래 꽃을 놓던 사람, 밀양 할매들이 송전탑 투쟁을 시작하면서는 불도 제대로 켜지 않던 사람, 추모사를 쓰고, 그 추모사를 읽으며 그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 누구보다도 해고자의 삶을 잘 알기에, 그들에게는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담담하게 크레인에 오르던 사람, 그렇게 살아온 35년이었다.”

기획단이 소개한 김진숙 씨의 삶이다.

김진숙 씨는 1981년 용접공으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1986년 민주노조 운동을 하다 부당 해고당한 뒤로 부산 삼화고무 노동자, 동래봉생병원 노동자,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자, 쌍용차와 콜트콜텍, KTX 해고 노동자 등과 함께 싸우며 35년간 노동 문제에 헌신했다.

또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40미터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하면서 해고자 전원 복직을 이뤄냈다. 그러나 김진숙 씨 본인은 복직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마지막 해고자로 남았다. 암이 재발해 지난 11월 수술을 받은 뒤 현재 투병 중에 있다.

한편 김진숙 씨 복직을 촉구하는 오체투지는 이날 여의도에서 출발해 남영동에 있는 한진중공업 본사 건물 앞까지 진행된다. 이어 18일에는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출발, 청와대 앞 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서울 오체투지에 이어 19일에는 김진숙 씨 해고 기간인 35년을 상징하는 희망차 350대가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 집결하는 ‘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부산’이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승용차나 승합차를 이용해 모이되 차에서 내리지 않고, 영상 편지, 엽서, 인증 사진 보내기나 유튜브 방송으로 연대할 예정이다.

현재 매각 절차에 들어간 한진중공업의 주 채권단이자 법정관리사인 KDB산업은행.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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