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 수도원, “수정만 주민 상생은 우리 일”
2011년 사업 중단된 수정만 매립부지로 갈등, 위험 여전 매립지를 마을 위한 공간으로, 주민간 치유와 화해 함께 모색
경남 마산 수정만 STX 조선소 설립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이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주민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고 폐조선소 부지를 상생의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 나섰다.
“STX 조선소 사업이 취소된 지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민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갈라졌던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매립지(사업부지)가 남아 있는 한 계속될 것이고요. 왜 수도원이 나서느냐고 묻는다면, 우선은 수도원도 이곳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또 지역 환경을 지키는 데 수도원이 마지노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수정만 매립지 조선소 건설을 막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싸웠던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장요세파 수녀는 다시 봉쇄수도원 밖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남 수정만 매립지 문제는 30년 전부터 시작됐다.
애초 매립지는 1990년 서민 아파트를 지을 목적의 부지였다. 그러나 마산시는 2006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이 부지 용도를 택지용에서 조선용지로 변경했다. 주민들은 격렬히 반대했고, 마산시와 STX는 금전적 회유, 수정 주민 고립 등으로 무마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주민들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반대 운동을 이어갔다. STX 조선소 사업은 졸속 행정, 대기업의 공격적 경영, 당국의 불법, 마산시와 STX의 주민 분열, 폭력 등으로 이뤄졌다. 또 이후 수정만에서 조선소가 지어진 이후 따르게 될 환경오염과 질병, 주택 균열, 황폐화, 소음 공해, 농업 및 어업 피해 등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은 매립지를 중심으로 원처럼 이뤄진 수정리 380세대, 인근 마을 10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원장이었던 장요세파 수녀는 “수도원을 이전해 주겠다”는 STX 측의 회유에 오히려 “삶의 터전을 잃는 주민들을 버리고 살 길을 찾는 것은 수도자의 모습이 아니”라며 봉쇄수도원의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단식, 1인 시위, 숱한 집회가 이어지던 2011년 6월, 지자체와 주민 반대, STX의 경영 실패 등으로 결국 STX는 공식적으로 수정만 조선소 사업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어졌다. 폐부지로 남아 있는 매립지를 중심으로 조선소 협력 업체 일반 산업단지 조성과 공장 설립 문제가 있었고, 조선소 부지 소유권을 가진 농협은 부지 매각을 시도했다. 또 조선소 건설 반대 과정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장 지대 조성을 반대하는 주민과 찬성하는 주민 사이의 갈등도 깊어졌다.
장요세파 수녀는, "매립지는 구산면 주변의 산으로 둘러싸인 바구니 같은 지형으로 소음이나 분진 등의 오염이 빠져나가기 어렵고 정화도 어렵다. 또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에 물류 등의 운반이 시작되면 오래된 가옥과 도로의 피해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매립지 주변은 오래전부터 386세대의 생활 터전이었고, 이들은 오랫동안 고생하며 살다가 이제 홍합 채취를 생업으로 삼으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나 다른 기피 업종들이 들어오면, 주민들이 기대 살던 수정만 생태계는 파괴되고, 주민들의 일상 역시 파괴될 것이 뻔하다.
그는 “처음 STX 측도 수도원에는 따로 이전과 보상을 해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주민과 다른 혜택을 받지 않기로 수도 공동체 모두가 의견을 모았다”며, “2011년, 2015년 공장이 들어설 위기를 주민들과 함께 막아내면서, 매립지가 그대로 있는 한,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봤고, 그렇다면 싸움보다는 이 매립지가 좋은 방향으로 쓰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말했다.
“2006년 이 일이 처음 터지고 2007년 싸움을 시작하면서 한 달만에 조선업이 얼마나 환경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지, 그리고 수도원 주변 이웃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게 됐어요. 또 국가와 지자체 행정과 기업들이 거짓 위에 서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부담이 될까 봐 누구한테도 말은 안 했지만 당시 매립지 한복판에 마치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대 싸움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여지가 없었고, 아무리 어려워도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현재 마을 주민들과 경남도, 창원시, 경남연구원 등은 매립지를 마을 상생에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고, 지역 주민 간 갈등을 봉합하는 방향과 방법을 찾기 위해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주민 간의 의견을 모으고 함께 입장을 나누고 조정하는 것이다.
장요세파 수녀는 “주민들 사이의 화해와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 가장 급하지만 그전에 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주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입장인지, 마을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스스로 꺼내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매립지 활용을 위한 논의는 출발할 수도 없고, 매립지를 어떤 형태로 쓰더라도 다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는 우선 입장이 다른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이도록 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경남도와 경남연구원, 마을공동체지원센터(경남도 산하), 지역문제해결플랫폼(행안부 위탁) 등을 통해 주민 워크숍 준비하고 있다. 또 창원시는 매립지가 산업부지로 쓰이지 않도록 공장 허가를 내주지 않을 방침이다.
지역의 중요한 현안인 만큼, 마산교구 사회복지국 최훈 신부와 정의평화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관련 회의를 통해 참여, 지원하고 있다.
그는 “최근 주민 화해와 치유를 위한 워크숍을 정하고 앞으로 5회 정도 진행하기로 했다”며, “중요한 것은 매립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곳에 무엇을 세울지가 아니라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 함께 마을을 위한 일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봉쇄수도원으로서 한계가 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얼마 전 워크샵에서 구체적 사안에는 이견이 남아 있지만 매립지 개발 찬반 입장을 넘어 거시적으로 “화해와 갈등 치유”라는 과제에는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7년 매립지에 조선소가 들어오기로 결정한 때부터 모든 싸움은, 모든 불법과 폭력, 환경 파괴, 생명권 무시 등 총체적 문제에 맞선 것이었다면서, “인권, 생명권,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 4년을 싸웠고, 그 이후에는 갈등과 이윤 다툼이었다. 홍합을 캐서 번 일당 약 3만 원으로 살아가던 주민들이 보상금을 거부한 이유를 기억하면서 이 지역을 다시 되살리고, 수도원도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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