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늦었지만 축하한다

[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2008-11-20     변영국

나는 궁금하다. 도대체 이 세상의 남정네들은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어찌 그렇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 수 있는지..

내가 좀 유별난지는 몰라도 정말 마음이 잘 통하는 딸네미와 단 하루라도 떨어져 있다는 것이 참 견디기 어려웠다. 친구들하고 한 이삼일 MT를 갔을 뿐인데 그 새를 못 참고 매일 밤 전화를 해서 그 전화에 대고 조잘조잘 떠들어대곤 했었는데 바야흐로 이 녀석하고 약 한달 가까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때가 다가왔다. 학교에서 비행기 삯이 나와서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간다는 것이다.

처음 그렇게 결정 됐다는 얘기를 듣고 마누라는 참 대단한 일이라며 방방 뜨며 좋아했고 우리 딸 최고라고 난리를 쳤다. 허나 나는 아니었다. 한 달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그게 무슨 날벼락인가...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내게 이런 모진 시련을 주신다는 말인가.
그래서 다음과 같이 그 축제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었다.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폭동이 일어났다는구나.”
“나도 알아. 그런데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어.”
“지금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곧 일어날 거다. 세계화의 모순이 점차 구체화되는 때에 프랑스라고 해서 노동자들이 참을 수 있겠니?”
“폭동이 일어나면 그것도 경험할 수 있겠네.”
“경험하다니. 이 녀석아 다칠 수도 있어.”
“아빠는 왜 그런 얘기만 해? 내가 프랑스에 가는 게 싫어?”

당연히 싫지... 미치도록 싫다.. 어떻게 한 달을 못 보고 살아 임마, 너를...
허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나는 또 한번 초를 쳤다.

“알다시피 아빠는 돈이 없다.”
“괜찮아. 내가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엄마가 준다고 그랬어.”

내 마음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주책 맞은 마누라가 다음과 같이 일설을 갈했다.
“토마스. 내 동생들 알잖아. 지연이를 끔찍하게 위하는 거. 둘이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준다고 그랬어. 걱정 마.”

걱정 말라니. 돈을 모아 준다는데... 그래서 결국 분명하게 애를 프랑스로 보내겠다는 데... 내가 어찌 걱정을 안 한다는 말이야, 엉?

“왜 그런 일에 처남들 신세를 지려고 그래. 없이 살아도 신세는 지지 말아야지. 안 그래?”
“당신은 신세 안 지고 살아?”

역시 악은 선을 이기지 못했다. 나야말로 남들의 도움으로, 남들 힘들게 하면서 연명하는 주제가 아닌가? 나의 어설픈 방해 공작은 그것으로 끝났고 나는 그 서글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딸네미가 웬 양놈하고 뽀뽀를 하는 상상. 소매치기한테 돈을 다 털리고 어느 광장 한 귀퉁이에서 울고 있는 상상. 유달리 김치를 좋아하는 녀석이 치즈와 바게트만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울고 있는 상상. 돈을 아낀답시고 기차 한 구석에서 잠을 자다가 지나가는 넘덜한테 발길로 채이는 상상...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최대한의 안전장치들을 하기로 했다. 우선 휴대폰 로밍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야. 너 핸드폰 그거 로밍해서 매일 전화해라.”
“왜? 그게 얼마나 비싼데...”
“비싼 게 뭔 대수야, 임마.”
“아빠 돈 없다며”
“잔말 말고 해.”
“나 집에 매일 전화한다고 약속 못해. 바쁘고 피곤하면 안 할 수도 있잖아. 아빠는 왜 그렇게 나를 못 믿어?”

이놈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다. 아니다 아니야. 솔직히 못 믿어서다. 그래, 나 너 못 믿는다. 어쩔래... 며칠 후, 나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지인 몇몇의 연락처를 들고 다시 딸의 방을 두드렸다.

“지연아. 제발 이것만은... 이것만은 가지고 가거라. 유사시에 도움이 되지 않겠니?”
“아빠 고마워. 그리고 걱정 마 로밍도 할 거야.”

아무튼 그러그러 해서 나도 딸네미의 한 달 외유를 받아들이게 된 오늘 (받아들이긴...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 한 거지.) 명동 성당에서 60대 형님 누님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시간에 그 얘기가 나왔다. 올해 70이 된 연세에 아주 귀엽게 공주병에 걸린 누님은 누가 공주병이라고 놀리기라도 하면 ‘아니야... 나는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야. 왜들 그래’ 하시며 정색하시곤 하는 ‘푸들’ 현영이 누님이 말씀하셨다.

“어머 선생님. 축하해요. 얼마나 좋으시겠어.. ”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딸로 태어나, 말하자면 몹시도 가난하게 태어나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한 달 동안이나 유럽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히 내 딸은 축하받을 만 했다. 밴댕이 소갈머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하나만 아는 주제에 애비라고 꺼떡댄 나만 그 아이를 축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딸아 너는 축하 받을 만 하다. 네가 공부해서 돈을 받았고, 네가 아껴서 자금을 모았고, 네가 잘 해서 용돈도 받았는데 아빠는 그런 생각을 하나도 못했다. 너와 함께 있는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 너의 선택과 네가 해야 할 경험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차제에 너 시집보낼 마음의 준비도 해 보마.
허나 양놈은 절대로 안 된다. 알겠지?

/변영국 200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