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가 꿈꾼 세상, 아직 멀다
24일 광주 망월동에서 추모미사, 추모대회
농민 백남기 씨(임마누엘)의 1주기 추모제가 24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열렸다.
추모대회에 앞서 봉헌된 추모 미사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제단과 문규현 신부 등이 공동집전했으며, 유가족을 비롯한 150여 명이 참석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이집트의 추적을 피해 홍해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
이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광주대교구 우리농 이영선 신부는 “이 자리는 생명과 평화, 자기 주머니를 비우고 털어서 나누자는 운동을 몸소 실천한 위대한 사상가 백남기를 다시 만나는 자리”라며, “이 시기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민중이 해방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며, 우리 모두를 그 꿈에 초대한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지난 겨울 촛불을 든 결과 정권을 바꿨지만, 생각해 보면 이제 겨우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이집트의 추적을 피해 홍해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우리는 광야의 40년을 만나고 또 그 속에서 목마르고 배고파하고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을 만날지도 모른다”며, “그 세월을 겪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합의, 십계명을 만들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또,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 1년간 특히 가톨릭농민회는 자신과 이웃이 누구인지 새롭게 발견했고, 서로를 보살피는 일이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며, “우리는 백남기 농민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서로를 보살필 때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늘 호주머니를 비워 나누자고 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 안의 탐욕을 비울 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새로운 꿈, 평등한 세상의 꿈을 함께 꾸자”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 이은 추모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추도사를 통해 백남기 농민이 서울로 올라와 외쳤던 농민의 인권과 존엄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문경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그동안 백남기 농민의 아픔을 함께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과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가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백남기 농민이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 평화의 세상, 그리고 농민들의 현실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이 땅의 평화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잘 하고자 하지만 주변국가의 연대, 보수세력의 반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생명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당사자인 우리가 바라는 삶을 지키기 위해 다시 단결하고 연대해 촛불로 다시 서야 한다”고 말했다.
“부디 수많은 백남기들이 이 땅을 치유하고,
한과 살을 풀어 내고 생명의 잔치의 주인장이 되기를”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김인한 신부(부산교구)는 2016년 11월 14일 당시 농민들은 늘 그랬듯 집회와 대회, 데모라는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축제를 만들었다며, “자신들의 살과 한을 잔치로 풀어 낼 수 있는 치유의 힘으로 더 자유롭게 놀고 신이 나는 자리였다. 하느님이 그곳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이 난 그 자리에서 밝게 부르며 걸어간 이가 백남기였고, 촛불의 불쏘시개가 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디딤이 된 그로 인해 지금의 수많은 백남기들이 다시 모여 한과 살을 푸는 난장을 펼치고 있다”며, “백남기가 우리를 이 광장으로 다시 불러 모으고 우리가 모인 이유를 물으며, 모여서 꿈을 꾸었던 시간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마지막까지 백남기 농민이 보여준 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진정한 물음이었으며, 지금 여기에서 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며, “백남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참 세상을 본다. 무너져 가는 이 땅에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들이 있다. 수많은 백남기들이 이 땅을 치유하고 생명의 잔치를 여는 주인장이 되어 이 땅에 잔치판을 벌이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사에 나선 백남기 씨의 부인 박경숙 씨는 “고인이 늘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노동자와 농민, 소외계층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었다”며, “그런 세상을 위해 여러분이 촛불로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었다. 지금은 독재라는 거목을 뿌리까지 뽑지 못하고 단지 베어 놓은 상태지만, 민주주의의 씨앗이 무성한 숲이 된다면 독재의 뿌리가 뽑힐 것이다. 그날까지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백남기 농민 1주기를 맞아 아직 이뤄지지 않은 국가폭력 사건의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관련 기관에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 총리는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백남기 농민의 가족에게 사과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데 이어 22일에는 가족들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
22일 백남기 씨의 부인 박경숙 씨와 큰딸 백도라지 씨, 가톨릭농민회 손영준 사무총장 등을 만난 이 총리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면서 사과하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빨리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