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정평위 총사퇴
"성찰과 반성의 시간 필요하다"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전원이 총사퇴하기로 했다.
위원장 신종호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정평위원 전원 12명은 논의 끝에 총사퇴를 결정하고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에게 위원 해촉을 청원했다고 밝혔다.
신 신부는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고, 그동안 고민해 온 문제들이 대구대교구 정평위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정평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솔직한 우리의 현 실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 멈춰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평위 활동의 안팎에서 오히려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한 정평위의 책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됐다”며, “정평위가 결국 교회 안팎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통감과 책임의식, 성찰과 반성을 통해 함께 나아가기 위한 호소”라고 말했다.
신 신부는 지난 5년간 대구대교구 정평위의 활동 전반을 통해 겪어 온 일들 중에서 가장 고민이 깊었던 것은 정평위를 둘러싼 ‘분열’이었다면서, “총사퇴를 통해 우리의 한계를 드러내고 방향성과 방법,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종호 신부와 정평위 총사퇴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총사퇴 결정까지의 과정과 논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구대교구 정평위가 2011년 재건된 뒤, 2015년부터 정평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정평위의 역할과 목적,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대구대교구라는 지역 특성상, 이슈에 맞춘 활동도 필요하지만, 신자들에게 정평위 존재 목적과 사회적 복음 등을 알리고, 참여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평위 활동을 하면서 점점 활동의 틀이 점점 좁혀진다는 우려가 생겼다. 정평위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제, 평신도들에 대한 폄훼, 선민의식이 여러 형태로 드러나고, 교회 내 구성원들이 적폐 청산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정평위에 참여하거나 마음을 모으고자 하는 이들이 동원의 대상이 되는 모습이 보였다.
정평위 활동이 정체성과 신앙의 관점에서 평가, 성찰하기보다는 개별 이슈가 있는 현장에서 정평위를 드러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사회교리나 교회의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갖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정평위가 오히려 다가가기 힘든 곳이 되기도 했다고 본다.
이러한 정의평화위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방법이 현장에서 갈증 해소를 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구민 전체와 함께 장기적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게 됐다.
특히 정평위에 참여하고 몸담은 이들의 방향과 생각대로 정평위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어떤 면에서는 ‘사유화’에 대한 경계가 필요했다.
"희망원 사태.... 정평위는 돌을 던져야 하는가, 함께 돌을 맞아야 하는가. 정평위는 돌을 맞는 교회 한복판에 있어야 했다."
희망원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정평위의 역할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한 이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정평위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평위가 왜 침묵하는가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 그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하고, 이번 총사퇴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희망원 문제가 터졌을 때, 사실 그 전부터 정평위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했다. 그 때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 “우리가 돌을 던져야 하는 입장인가, 아니면 함께 돌을 맞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에 대한 정리였다.
책임 회피는 아니다. 다만 정평위 역시 이전에 벌어지고 있었던 상황을 놓치고 있었고, 그 과정에 대해 함께 회개하고 보속하는 입장이어 한다는, 교회의 자리에서 함께 돌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평위 역시 돌을 맞아야 하는 죄인, 세상 속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교회에 돌을 던지는 판관이 아니라 돌을 맞아야 하는 교회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했다.
그 상황이 아팠고, 그 속에서 떠나고 등 돌리는 이들을 보면서도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정평위는 교회를 떠나서 있을 수 없고, 교회 밖에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평위는 단지 사회운동체나 사회운동을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움직여 시대적 사명감을 체득하게 하는 임무가 있다.
희망원 사태를 겪으면서 결정적으로 희망원을 비롯한 교구의 모든 문제에 대해 내려놓고 스스로 침묵하는 시간을 갖자고 결의하게 됐다. 물론 존재하는 한 최소한의 해야 할 일들은 하자는 입장이었다.
최근 들어 교회 내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회의 대처방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회는 ‘교회의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먼저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대응이 느린 것은 맞다. 그것이 괜찮다거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우선 교회는 일반 사회에 비해 현실업무 감각이 떨어진다. 일반 업무 방식이나 행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고, 전혀 다른 시스템과 문화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가 입장을 내거나 사과를 하는 것에 아주 느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회 존재론적 차원의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방식은 먼저 내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즉각적 처벌은 오히려 쉽다. 그러나 교회는 누구도 먼저 품어 안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분명 치열한 논의와 공방이 있다. 모두가 침묵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서툴고 충분하지 않은 업무 능력으로 문제가 생기면 결과적으로 노동권이나 인권침해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결과에는 교회가 누구보다 예민해야 한다. 교회 전체뿐 아니라 그런 문제에는 정평위가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몫과 책무가 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한다.
정평위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원 말고도 성주 사드배치 반대 대응 과정에서도 나왔다. 관할 지역인데도,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어떤 답변을 할 수 있는가.
희망원 사태를 겪는 중에 사드 문제가 나왔고 정평위는 반대 활동을 위해 교구장에게 청원을 했다. 교구장은 소성리에 있는 피정센터 미사를 포함해 소성리에서 기도회, 말씀전례 등 모든 활동과 지원에 대해서는 열어뒀지만, 거리 미사는 방어수단이나 싸움의 수단이 될 것을 우려해 허락하지 않았다. 정평위는 교구장의 선택과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교구장의 입장만 고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에 맞물린 상황들로 대구 정평위가 적극 나서기 힘들게 됐다.
정평위 총사퇴 이후 대책은 무엇인가?
이번 총사퇴로 대구대교구에서 정평위가 영구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충분한 성찰과 회복의 시간을 거치면 교구 공식기구인 만큼 절차와 방식을 마련해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 현재 희망원 사태를 계기로 올해 3월부터 대교구에 ‘쇄신과 발전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나 역시 쇄신위 일원이다. 공적으로 교구가 쇄신과 발전의 의지를 표명한 것인데, 교구 내 쇄신을 위한 제안과 요구안을 받고 있다. 교회 제도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안이 터졌을 때, 어떻게 평가하고 성찰하고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곧 쇄신과 발전위원회 주관으로 이 사안에 대한 임시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쇄신과 발전위원회가 추구해야 할 쇄신의 방향은 무엇인가?
결국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원천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타성에 젖었고, 소홀해 왔다. 그 결과가 여러 사회적인 문제제기로 드러나게 됐다. 어떤 일을 할 때 표현과 방식, 태도가 복음을 따르느냐의 여부를 분별하고 식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비전이다. 교회 전체와 각 교구, 본당에 비전이 있는가. 물론 목표가 있지만 그것은 주로 양적인 것이고 평가조차 양적으로 하고 있다. 양적인 제시는 비전이 아니다. 교회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공동선, 인간존중, 연대성, 지역 내 본당의 역할 등이 비전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공적인 책임이 클수록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 교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구체적이고, 그래서 비전을 제시하는 지표 또한 구체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정평위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오늘 총사퇴 결정을 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교회 안에서 새로운 과제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이를테면 20여 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교회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사제들조차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권위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맞는 것만 권위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구원의 시간은 결국 지금 우리가 몸담은 공간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의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시간 속에서 하느님이 그분의 역사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 그런 신앙이 필요하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지금 당장의 행동과 그 결과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그 마지막 완성은 하느님의 몫이라는 것, 정말 답답하고 용납되지 않더라도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야곱, 이사악의 시간을 역사하셨다는 것을 잊지 않고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을 때, 지금 여기에서 구원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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