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사망이 병사? 획기적이다"

유가족, "부검 결코 원하지 않는다"

2016-09-26     정현진 기자

경찰이 25일 밤 백남기 씨 주검을 부검하기 위해 신청한 영장(압수수색 검증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가운데, 이철성 경찰청장은 26일 재청구 여부를 오늘 중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이 ‘급성심부전으로 인한 심정지사’로 돼, 처음 지주막하출혈로 진단된 것과 달라 부검을 통해 사인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백 씨가 죽기 전부터 부검 의사를 밝혀 왔고, 사망 뒤에는 서울대병원 측의 사망진단서 내용으로 부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을 사고, 외부의 충격 등에 따른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로 진단해 논란을 빚고 있다.

검시만으로도 사망 원인은 80퍼센트 가량 확인 가능
법적, 의학적으로 이미 분명한 사망 원인.... 가족도 원치 않


그러나 백남기 씨의 상태를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대부분의 의무기록 등을 모니터링 했던 의료진, 검시에 참여한 법률가들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명백히 물대포 충격에 의한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이며, 모든 법적 정황과 의료기록을 통해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25일 밤, 검시에 참여했던 이정일 변호사를 비롯한 신경외과 전문의 등은 검시 결과에 대해 토론한 결과를 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은 필요하지 않다”고 확인했다.

▲ <시사인>이 입수한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일부.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표기됐다. (사진 제공 = 주진우)

가족들의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는 민변 이정일 변호사는 사건 당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직후부터 의료진은 백남기 씨의 외상성 뇌출혈은 물대포의 충격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밝혔으며, 이같은 진술은 살수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국가인권위 조사 과정에서도 똑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이 변호사는 의료진들이 당일 수술 의무기록과 영상 자료, 의무기록지 등을 처음부터 계속 모니터한 결과, 백남기 씨의 외상 출혈은 직사 물대포 외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다는 소견이었다고 확인했다.

이 변호사는, “부검은 사망 원인을 잘 모를 때, 밝히기 위한 것으로, 백남기 씨의 경우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부검 요구를 하는 것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며, 백남기 씨에 대한 두 번째 국가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검시에 참석하고 그동안 백남기 씨의 투병 과정을 살폈던 의료진들도 의견을 더했다. 먼저 우석균 정책위원장(보건의료단체연합)은 검시를 통해 백남기 씨가 병원으로 후송됐을 당시의 진단 내용인 “외상성 경막하출혈과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뇌탈출증, 두개골과 안와, 광대 부위의 다발설 골절” 등과 어긋나는 소견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이는 법의관도 “뇌외상이 사망 원인이라는 것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대한의료협회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또 그는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 지침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망원인은 맨 아래 쓰인 선행원인으로 되어야 하며, 이 지침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보도된 것과 달리 급성심부전이 아니라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남기 씨의 상태를 살펴 왔던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경일 씨도, “백남기 씨는 병원에 왔을 때 이미 심한 외상성 뇌손상으로 소생 불가 판정을 받았던 상황”이라며, “어떻게 주치의들이 외인사냐, 병사냐를 두고 고민할 수 있나.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놀라워 했다. 그는 “사인을 병사로 본 것은 물대포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갑자기 쓰러질 수 있었다는 쪽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냐”며, “‘외인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확인했다. 이런 명백한 상황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고민할 부분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 검시가 끝난 25일 밤, 검시 참가자와 야당 국회의원들이 부검 반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현진 기자

조연수 변호사는 백남기 씨의 의료기록을 전혀 보지 못한 검안의도 이번 검시만으로도 물대포에 따른 외상이 원인이라는 것을 80퍼센트는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면서, “검찰이 모든 의료 기록을 가져갔으니, 나머지는 부검이 아니더라도 의료기록을 통해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대표로 참석한 백남기 씨의 큰 딸 백도라지 씨는, “무엇보다 가족들이 부검을 결코 원하지 않으며, 편안히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뿐”이라면서, “어제와 오늘 경찰이 병원 둘레를 싸고 있는 것은 돌아가신 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사망 원인이 분명한데, 가시는 길까지 편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25일 오전 기자회견에서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3명이 백남기 씨에 대한 의견을 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내과 전문의인 이들은, “환자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이며, 당시 상태는 당일 촬영한 CT영상과 수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317일간의 투병 과정으로 외상 부위는 수술적 치료 및 전신상태 악화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사망 선언 후 부검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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