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을 때까진 해야죠"
날마다 봉사의 삶을 사는 성은이 할머니
2008-11-19 박영대
1월 13일 일요일 점심때가 조금 지나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거기서 봉사하는 성은이 할머니, 최정옥님(73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성은이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2003년 둘째딸 혜민이가 외손녀 유성은과 함께 인천교구 송림동본당에서 첫영성체 가정교리를 하게 된 인연 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성은이가 사정상 엄마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성은이 할머니가 부모 모임에 나왔다.
그나마 내가 점심때를 피한 건 서울 무료 급식소 가운데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서울 손님들이 몰려 국수집이 하루 종일 붐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화도고개를 오르는데 주민총회와 재개발조합 결성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여기도 어김없이 재개발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국수집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적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 참석자에게 점심과 약간의 용돈을 주기 때문에 평일보다 손님이 적다고 했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 송림동성당 후문 근처 성은이 할머니네 집으로 찾아갔다. 오전 10시 반쯤 국수집으로 가신다기에 10시가 좀 못 된 시간에 찾아뵈었다. 2년 전쯤에 이사했다는데,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허름한 한옥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도 있겠지만, 마루에 연탄난로와 숯 화로가 놓였는데도 집안에는 온기가 별로 없었다. 전기패널을 깐 집인데 전기요금 때문에 켤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처음 한 달 잠깐잠깐 켰는데도 20만원이 훨쩍 넘는 요금이 나온 뒤로 아예 선을 뽑아놓았다. 성은이 할아버지 조춘락님(79세)이 이부자리가 빈틈없이 깔린 안방에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뒤에 보이는 이가 자원봉사자 이명희님. " width="413" height="550" layout="responsive" class="amp_f_img">
뒤에 보이는 이가 자원봉사자 이명희님.
그래도 성은이 할머니는 10년 넘게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송림동과 송월동의 사랑의 이웃집, 석남동 온정의 집, 도원동 기쁨의 집 등이 성은이 할머니가 봉사해 온 곳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주로 민들레국수집에서 봉사하고, 국수집이 쉬는 목·금요일에만 다른 곳에서 봉사한다. 허리도 다리도 모두 불편한 걸 알기 때문에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전날 국수집에서 봉사할 때도 짬만 나면 무언가를 짚고 비스듬히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불편해 보였다.
“그렇다고 집에서 있으면 뭐해요? 몸이 아프면 쉬더라도 일할 수 있으면 일해야죠. 그리고 수사님(서영남)이 가끔 쌀도 주시고 반찬도 챙겨주시니 고마워서라도…….”
“마음껏 먹게 하는 거죠. 다른 데는 조금 주고 더 먹고 싶으면 더 가져다 먹게 하는데, 민들레국수집은 처음부터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으라고 하잖아요.”
흔히 사람들은 이 담에 돈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도 돕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가운데 나중에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나중에도 그럴 수 있다. 아마도 성은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의 삶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영대 2008.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