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복음과 문화] 엽기활극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11-17     김원

그들 부부는 성실했다. 성실하고 또 성실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그것도 자랑이라고) 유지 중인 이 나라의 평균치를 훨씬 뛰어넘어 손발이 닳도록 일했다. 안국진 감독의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목부터 성실해서 섬뜩하다. 뭔가 우리 사는 세상을 콕 집어내 정확히 단면을 잘라 보여주며 ‘이래도 아니야?’식의 풍자를 보여줄 듯한 뉘앙스 아닌가.

더 이상 열심일 수 없게 일만 해댄 결과, 주인공 부부는 자꾸자꾸 불행해진다. 불행은 진즉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이 한 고비를 간신히 넘기면 발목을 부러뜨리고 그 다음은 손목을 급기야 목을 부러뜨리는 식으로 차곡차곡 덮쳐온다. 드디어 어떤 솟아날 구멍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말이다. 불행은 실수로라도 비껴가는 법이 없다. 행복에 목을 매는 그 절박성만큼, 불행은 꾸준히 삶을 갉아먹는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환장할 노릇이다. 실은 공감 100%에서 오는 탄식이다. 수남(이정현 분)이나 그 남편 규정(이해정 분)이나 왜 저리 성실한가? 열심히 일하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에 한 번쯤 저항조차 안하는가?

그런데도 영화의 전체 분위기는 코믹하다 못해 발랄하다. 이정현의 혼신을 다한 천진난만한 열연과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등 배우들의 연기만 보고 있으면 웃겨서 잠시 장면의 맥락을 잊어버리곤 한다. 표현주의적이고 연극 같은 장면들의 기발함도 재미있다. 정말이지 ‘고시원’ 방의 비좁음을 얼마나 숨통 막히게 잘 그려냈는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돌아서면 아찔하다. 여기에 포착된 우리의 현실이.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2015.

수남은 불굴의 성실성 하나로 이 세상을 헤쳐 왔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열심히 했다. 실업계 고교의 그 많은 자격증이 ‘컴퓨터’ 하나의 등장으로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된 것도 모른 채 공부만 했다. 물론 수남만 몰랐던 건 아니다. 그 많은 선생님들과 그 많은 대회 관계자들, 자격증 발급 기관들도 모르거나 최소한 알면서도 애들을 부추겼다. 수남은 전교 최고의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쓰지 않는 열악한 공장의 말단 사무 보조로 취직한다. 고단한 직장생활을 위로해준, 그녀가 울 때 달래준 착한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한 것까지는 좋았다.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는 마음 하나로 사는 보람이 생겼다.

그런데 남편은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 신세였고, 보청기마저 안 들려 (집 장만할 돈으로) 인공와우 수술에 2천만 원을 들였으나 작업 중 손가락이 잘린다. 수남은 삶의 의욕을 잃은 남편을 위해 9년간 잠도 자지 않고 일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치솟고 생활은 늘 쪼들린다. 결국 빚더미를 안고 집을 산다. 산비탈의 허름하지만 아늑한 ‘내 집’은, 그러나 이후 이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남편이 식물인간 상태로 숨만 붙어 있게 되는 비극도 순식간에 찾아온다.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잘하는 재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던 수남은 드디어 어느 날 손에 ‘칼’을 든다. 견딜 수 없는 온갖 폭력이 날마다 태연히 자행되는 재개발지구의 ‘행운의 집주인’이 되어 질시와 배제의 포획물이 된 수남의 가혹한 처지는, 엽기 잔혹 활극이 아니고는 탈출이 불가능해 보인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행복해질 줄 알았다.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집 한 칸쯤은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런 꿈은 이 ‘성실한 나라’에서 감히 꾸어선 안 되는 것임을 일깨운다.

성실한 일벌레들의 나라에선 모든 것이 기계적이다. 왜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 일을 해서 잃을 건 뭐고 얻을 건 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집부터 사야해! 우리 아가를 나처럼 살게 할 순 없어.”라는 식의 결연한 의지만이 세뇌된 성실함을 견인한다. ‘집’은 대전제이며, 삶의 모든 고통과 설움을 달래 줄 최종 목적지이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당위 같은 존재로 굳어 있다. 그렇게 모두 미친 듯이 집에 매달리다가 집과 함께 파산하거나 폭발사고로 죽거나 이윽고 집과 운명을 함께 한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일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고용과 임금 체계.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이자고 목소리를 내면 ‘빨갱이’가 되는 나라. 어쩌면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나라. 이것은 거의 늪이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도 없는 암담한 살림살이, 몸을 펴거나 기지개를 켤 수도 없는 좁디좁은 방, 병원비와 대출로 인한 엄청난 빚더미... 그리하여 관람 소감은 참으로 오싹하기 그지없다.

성실한 나라에서 수남은 돌연 결단을 내리고 실성한 듯 천하의 칼잡이가 되며, 남편과 함께 둘만의 ‘신혼여행’을 위풍당당하게 떠난다. 바다로 가는 그 길 끝에는 부디 잠시만이라도 휴식과 평화가 있기를. 수남과 우리 주변의 무수한 앨리스들이 부디 조금만 행복해지기를. 이 말을 쓰는데 눈물이 난다.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루카 5,5)


김원
/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