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
[기획-밥벌이, 생계 이상의 의미]
새벽 다섯시 반 / 고성리 인력사무소에는 / 아직 녹지 못한 눈들이 모인다
삼구컨테이너 / 꾹꾹 눌러 눈사람이 모인다 / 지난 백색의 전투는 치열했다
오래된 신문 / 닫힌 교문 / 고립된 교차로 / 패쇄된 공장
성산읍 고성리 인력사무소는 / 바다가 보인다 / 일출봉도 보인다
아침마다 잔설은 숨어야한다 / 뜨거운 자본의 색출은 / 수용소 서치라이트보다
슬프다 / 잔설은 누구나 바다를 본다 / 그때 우리는 바다에 있었다
누구도 바다를 말하지 않는다 / 작은 자본이 왔다 / 김씨 / 박씨 / 이씨 / 호명되며 물이 된다
칠월인데 / 고성리 컨테이너에는 / 아직도 눈이 녹지 않는다
호명된 현장은 우도였다. 성산항에서 우도 하우목동항까지, 도항선으로 10여분 거리. 자재처럼 1톤 트럭에 몇몇이 강같은 바다를 건넜다. 비양도가 보이는 바닷가 상가 건물에 조립식 판넬로 비가림 케노피를 설치하고 몇가지 보수를 하는 일이었다. 주인부부는 행복해보였다. 16살 때부터 빵기술을 배워 40여년의 빵이 자식을 키우고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작년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터를 잡아 빵과 음료를 파는 예쁜가게를 지었다. 그러나 지은지 1년도 안된 건물에 비가 새고 몇가지 하자가 있었다.
집짓기는 기본적인 비가림에 햇빛과 바람의 조화로운 분배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햇빛이 어디에 서서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야하는지. 한겨울 바람에게는 얼마나 냉정해져야하는지, 숨막히는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더위의 바람과는 어떻게 비교되는지. 부실 공사에 부부는 공사를 맡은 친구를 크게 탓하지 않았다. 시세보다 많이 더 주고 지은 집에, 그 친구도 그만한 사정이 있지 않겠어요 하고 웃으셨다. 우리는 그 웃음만큼 긴장했다. 그 주인 분에게 그만큼 일을 잘 해주어야했다.
쇠 파이프, 앵글을 크기에 맞게 절단하고 기초를 위해 땅을 팠다. 삽으로 굳은 땅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적당한 팔 다리의 굴절과 힘 그리고 소나기 같은 땀방울이 하는 일이다. 금세 용접봉의 불꽃처럼 땀이 작업복에 번졌다. 글라인더가 용접면을 갈아내고 샌드위치 판넬이 지붕을 형성해 갔다. 지붕에서 판넬 고정 작업은 반사열과의 싸움이었다. 태양은 오후 내 거기서 우리의 피로를 시험 했다. 우리는 거친호흡을 죽이고 일했다. 힘들었지만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가 파이프 절단기를 돌렸다. 오늘따라 절단기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파도소리 때문이었다. 요란한 기계음이 땀이 뱉어내는 거친 호흡과 파도소리를 제어했다. 문득 일 다 팽개치고 조용히 파도소리가 듣고 싶었다. 이내 쓴 웃음을 지었다. 현실은.
이 순간 나의 땀은 한술의 밥이다. 우리의 용접불꽃은 저녁식탁의 촛불이다. 쇠를 자르는 절단기소리는 우리를 안아주는 소박한 울림이다. 실리콘과 세멘 몰탈이 차이의 틈새를 메꿀 쯤 이면, 태양이 샌드위치 판넬 지붕 위 우리가 쏟은 땀을 넘어 저쪽바다에서 석양을 준비할 때 쯤이면, 집으로 가야할 시간. 일당이 든 봉투와 함께 주인부부의 행복이 성산항으로 돌아오는 도항선 배 말미 스크류 따라 바닷물처럼 무겁게 흔들렸다.
오래된 신문 / 닫힌 교문 / 고립된 교차로 / 폐쇄된 공장
호명되며 물이 된다 / 눈물은 아니었다.
신화섭 / 집 짓는 일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