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라는 기도

[기획-당신의 기도, 당신의 하느님]

2015-11-03     김명진

‘나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사는가?’ 글을 부탁받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제 삶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로 모아지네요. 저는 하느님을 생각할 때 제일 크게 다가오는 건 ‘자유’입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고 자유 그 자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속박하거나, 자유와 반대되는 것에 대해 저는 하느님과 반대되는 것이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살고자 기도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며 이것을 기도로 여깁니다.

8월에 '탈핵희망 국토순례'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 순례가 여름휴가였지요. 평소 사회적 연대에 관심과 참여가 많은 우리 가족이 선택한 여름휴가도 연대의 연장인 셈이지요. 열두 살 아이도 함께 했는데, 아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늘 우리 부부와 함께 연대하는 곳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소리도 듣고 비난하는 소리도 듣고 칭찬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 연대를 하는가?' 늘 성찰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당위성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한 자발적인 참여인 셈입니다.

▲ 기도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면, 그 백성을 사랑하는 것도 기도의 연장이다. ⓒ김명진

연대의 장소에 가면 더 또렷하게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왜”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게 되고, 뿌옇게 보이는 것이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신자유주의의 피해가 커지면서 사람의 자유가 속박당하고 아주 쉽게 빼앗겨 버리는 것을 보면서 제 삶의 선택은 하느님의 ‘자유’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자유’는 ‘나 혼자’만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에 있어 경계하는 것은 “끼리끼리”입니다. 같은 종교, 같은 교회 등의 공통점을 찾아 마치 특권인 것처럼 모이는 것을 경계합니다. 아니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나누기 보다는 모아들이시는 분이시고 ‘너를 향한 존중’이 너무 크셔서 가끔은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끼리끼리’는 이런 하느님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경건한 장소에서 경건하게 바치는 기도도 중요하고, 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장소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것도 기도라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연대’라는 기도를 계속 하게 될 겁니다. 이 ‘연대’ 라는 기도는 ‘선택과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튼튼해지고 깊어질 것이기에 그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제 몫이라 여기면서요.


김명진 / 
디새생활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