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상상일 뿐
[기획-No touch! 휴가 24시간을 준다면]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은 이제 아홉 살, 일곱 살, 다섯 살이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키우며 아이들이 주는 기쁨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 매 순간 행복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엄마’와 ‘기옥경’ 사이에서 순간순간 갈등을 겪고 정체성 혼란도 겪고 있다. 그런데 요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2012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이 마지막 인사도 없이 하늘로 떠났기 때문이다.
남편 없이 어린 아이들 셋을 돌보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참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부모님들이 도와주시고 계시지만 ‘남편’과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늘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쁘고 힘든 모든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 슬프고 힘들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때때로 아이들이 어깨에 지어진 커다란 짐처럼 느껴질 때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남편이 그리우면서도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남편이 떠날 때 8개월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다섯 살이 될 정도로 부쩍 자랐고, 아이들이 자기 일도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하면서 엄마인 나를 돕고 있어 처음 몇 년보다는 많이 울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됐다. 이젠 세 아이들이 함께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쉴 수 있는 시간도 생겼지만, 여전히 나를 돌볼 시간이 없는 것이 늘 아쉽다. 그래서 24시간의 휴가는 상상만으로도 나를 신나게 한다.
만약 나에게 24시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우선 나는 내 속의 죄스러운 부분들을 털어내고 싶다.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처음엔 내게 신앙이 있기에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힘든 고통을 주시는 그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성당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요즘도 아이들이 가기 싫다고 하는 날이면 강요하지 않고 그 핑계로 나 또한 쉬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는 여전히 그 분이 그립다. 그래서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면 우선 고해성사를 드리고 성체조배실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싶다. 그 분과 회심의 대화를 하고난 뒤에야 나머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후련하게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분과의 대화가 끝나면 혼자서 영화를 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매번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만 봐왔다. 물론 애니메이션도 때론 재미있지만, 난 아주 서정적이고 슬픈 영화를 보고 싶다. 영화를 핑계 삼아 참았던 눈물들을 모두 토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가슴에 쌓인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면, 친구와 여행을 가고 싶다. 이십대 초반 절친과 함께 갔던 여수 여행, 내 인생의 짝꿍과도 같은 친구와 떠났던 보성 여행 때처럼, 그렇게 단 둘이 길을 떠나고 싶다. 탁 트인 바다를 가고 싶기도 하지만 친구와 조용하고 아름다운 숲에서 편하게 앉아 자연을 느끼며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편안히 잠을 잔다면 그보다 멋진 휴가가 어디 있을까 싶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24시간의 휴식!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내가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며 지낼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내 사랑스러운 세 아이들이 생각날 텐데...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을 것이고, 또 예쁜 걸 보면 보여주고 싶겠지. 휴! 24시간을 준대도 즐기지 못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세 아이의 엄마인가보다.
기옥경 / 초등학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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