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안에서 얻은 지식

[기획-삶의 도움닫기, 배움]

2015-06-25     편집부

머리에서 가슴은 삼십 센티미터 거리. 어떤 사람에게는 짧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한정 멀기만 한 거리다. 기쁨을 낳기도 하고 한숨만 내쉬게도 되는 거리다. 배움이란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고, 마음도 필요하다고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란 책에서 파커 파머가 말했다.

 
그는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라면서,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들어 낸 미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다큐 <그날 이후(The Day after Trinity)>를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어느 과학자는 "폭발이 있기 전, 실험실에서는 어쩌면 원자폭탄으로 대기권이 폭파되어 지구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이 오갔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실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무자비한 버섯구름 아래서 일본의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끔찍하게 죽었다. '트리니티'라는 말은 최초 원폭투하일을 일컫는 암호명이었는데, 신학용어로는 '삼위일체'를 뜻한다. 방사능을 알리는 노란색 표식도 삼위일체의 로고처럼 보인다. 지식을 향한 열정이 참극을 낳았으나, 이것도 하느님의 뜻인지, 고약하다.

파커 파머는 지식의 원천이 호기심과 지배력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어린애처럼 캐묻기 좋아하는 존재다. 닫혀있는 상자를 보면 즉각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사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열정에 몸살을 앓는다. 그 호기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지배욕구가 부당한 권력이 되면 더 끔찍한 결과를 빚어낸다. 원자폭탄은 지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오만한 과학자들과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려는 정치권력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결과는 '죄 없는 이들의 죽음'이다. 그러나 파커 파머는 자비와 사랑에서 비롯된 지식도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사랑을 갈망하듯이, 깨어진 자아와 분열된 세계를 화해시키는 지식이다.

"호기심과 지배욕은 이웃과 세계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지식을 만들어 내며, 아는 것을 노리개로 사용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랑에서 비롯된 지식은 우리를 삶의 그물망에 연루시킨다. 그 지식은 자비 안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기쁨과 엄숙한 책임의식을 낳는다."

▲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의 저자, 파커 파머(Parker Palmer).

도스토예프스키는 "행동하는 사랑은 가혹하고 무서운 것"이라 말했다.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민 때문에 일하는 사랑이고, 지배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효과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얻는 지식이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바리사이들에게 붙잡혀 온 여인을 앞에 두고, 결정에 앞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 마디 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는데, 이 긴 시간이 왜 필요했을까? 아마도 군중들에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호기심에 열뜬 군중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고 다시 가련한 여인에게서 연민을 발견할 시간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죄 많은 백성이고, 그처럼 가련한 인생과 나누는 공감이 세상을 구원할만한 지식을 낳는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1)


뜻밖의 소식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