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진짜 세상을 보는 먹먹함

[김원의 리얼몽상]

2015-06-12     김원

어떤 하나의 프로그램이 새로 신설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을 비추는 빛이나 거울이 될 수는 있는 걸까. 그런 꿈을 가졌다 한들 끝까지 그 초심과 시선을 지켜 갈 수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화려함과 풍요로 포장된 듯한 TV 속에서, 사회의 춥고 어두운 곳을 비추는 시선은 드물어진 지 오래다. 불과 몇 해만에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은 지상파에서 거의 밀려나다시피 됐다.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설명하는 홈페이지의 사진.(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종합편성채널 JTBC는 지난 5월31일 ‘정통 탐사기획’을 표방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일 오후 8시 40분)를 선보였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단어인 ‘정통 탐사기획’이 아주 잠깐 빛처럼 눈에 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범람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예능이 많고 나머지는 드라마로 양분된 텔레비전 환경 속에서, 정색하고 사회를 들여다보는 일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행여 그런 프로그램이 나와도, 이 고단한 여정을 함께 해 주고 관심을 기울이는 시청자가 없다면 당장 다음 주를 기약할 수 없는 척박하고 가차 없는 방송 환경이기도 하다. 일단 반갑다.

첫 방송의 진행자 멘트를 옮겨 보겠다. “안녕하십니까? JTBC가 새롭게 선보이는 정통 탐사기획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맡은 이규연입니다. 제작진과 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1회는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 철창 안의 절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현재 지상파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바 있어, 이제 소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꽤 아는 분들이 많아졌다. 2000년 3월 일어난 사건으로 딸이 보험금을 노려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판결로 그 딸은 15년째 독방에 무기수로 수감돼 있다. 경찰과 검찰이 아무런 물적 증거 없이 허위 강제 자백만으로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다는 정황이 있어 대한변호사협회가 재심을 청구했다. 15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그녀 김신혜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세상이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에도 15년간 줄기차게 자신의 무죄와 아버지가 성추행과는 무관한 분임을, 사건 자체가 날조되었음을 주장하며 감형도 가석방도 거부해 온 그녀다.

‘스포트라이트’가 조망한 15년 전의 수사과정과 사건일지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다. 범인은 처음부터 그녀로 정해져 있었다. 유일한 증거는 자백이었는데, 폭력으로 얼룩진 강제 허위자백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녀는 고모부의 납치에 가까운 이끌림으로 ‘자수’한 사건이었는데, 자수 사건에 대한 전직 경찰관의 인터뷰는 충격이었다. "자수 사건은 일종의 뒤치다꺼리예요. 경찰이 검거한 게 아닌 자수 사건은 경찰관이 수사를 해도, 표창장도 없고 실적도 없는 사건." 이게 당시 완도경찰서의 본질적 진실이었을까. "법에서 절대적으로 금하는 예단, 선입견을 깔고 한 전형적인 잘못된 수사" (동국대 법학과 방희선 교수), "자기들이 원하는 답이 안 나오면 때렸어요.”(김신혜씨 형제들)...

진행자의 말대로 “수사 당시 경찰의 시간은 쫓기고 거칠고 허망했”다. 폭력과 야만의 수사였다.

만약 재심이 인정된다면 복역수에 대한 첫 사례라고 한다. 탐사 저널리스트 이규연은 말한다. “그녀가 여전히 진범이라고 믿는 분도 그렇지 않다고 믿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녀가 적절한 수사와 정당한 권리를 보장 받았는지, 재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재심의 저울은 사법안정에서 정의실현으로 기울어질 수 있을까요? 김신혜는 과연 재심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진실은 신만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실을 구하는 절차는 인간도 알 수 있다는 자막으로 끝나는 이 프로그램의 엔딩은 한동안 먹먹한 슬픔마저 안겨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대다수는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나는 또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나마도 6월 7일의 2화 ‘'가출 싱크홀' 기생수가 산다’를 보고 나니 얄팍한 감상조차 가질 수 없었다. “가출청소년 쉼터에서 "옷 좀 야하게 입고 문신 있거나 그런 여자애들, 옆에 가서 슬쩍 돈 있니? 돈 급하니? 이런 식으로 물어봐서 일 좀 할래? 어떤 일인데요? 해 보면 알아.... 그런 식으로” 그렇게 가출 소녀들을 유인해, 채팅앱으로 성매매를 시키는 앱만 700개가 넘는다는 스마트폰 환경. 우리가 잘 모르는 동안, 이 정도까지 와 있었다.

▲ 가출 청소년의 성매매를 다룬 2회의 한 장면.(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그나마 용기 있게 인터뷰에 응해준 전직 ‘관리자’들은 말한다. “미성년자 애들을 쓰려면 내 여자를 만들어야 돼요. 잘해주고 돈이 필요하다고 계속 말을 하고. 가출한 애들이 왜 가출하겠어요. 관심 못 받고 사랑 못 받고. 그런 애들한테 돈 10만 원 갈 거를 가로채는 거죠. 뭐 차가 고장났다 뭐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 그러면 남자가 떠날까봐 돈을 주는 거죠. 미성년자를 쓰려면 완전히 내 여자로 만들어야 돼요. 그러다가 걸리면 생활비로 쓰려고 했다고, 이러면 갈취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연인 사이다. 그 돈은 생활비로 쓰려고 모았다 이러면 할 말 없는 거죠.”

이규연 탐사 저널리스트는 말한다. “제가 사건기자로 일했던 88년 인신매매 횡행 때는 가출소녀들을 납치 감금 협박.... 27년 뒤인 지금은 연인 관계 설정으로 착취하는 신종 수법-기생수- 남자 친구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방식입니다.”

가출 소녀들이 갇혀 있는 건 ‘심리적 감옥’이라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성매매 청소년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범죄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범죄자로 보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잘못된 어른들에게 속았던 보호대상자로 여기지 않는 이 나라. 메르스 보다 더 위험하고 시급한 문제는 아닐까요.”

그리고 이번 일요일 밤에는, 드디어 문제의 ‘메르스’를 다룬다. 대한민국의 메르스 사태를 X-이벤트로 진단한다. 발생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일단 벌어지면 엄청난 파급력으로 사회를 뒤흔드는 극단적 사건을 뜻하는 단어다. '한국적 메르스'는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 대한민국의 독특한 문병과 간병 문화, 의료 소비자들의 의료 쇼핑, 정부와 지자체의 혼선 등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X-이벤트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힘들다. 시청 자체가 만만치 않은 통증을 동반한다. 한동안 지상파에서 이런 탐사프로들이 안 보였던 터라, 갑자기 더 혼탁해지고 급격히 어두워진 것만 같은 우리 사회를 인정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리뷰랍시고 썼지만, 실은 이 순간에도 혼란스럽다. 그래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로 했다. TV 시청만으로도 뭔가 조금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보기로 했다. 잠시 이렇게나마 같이 있어 주고 싶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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