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누가 제발 멈추어 다오

[김원의 리얼몽상]

2015-06-05     김원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도발적이어도 그저 ‘미녀 1만’의 머리 수 하나를 채우는 소품에 불과하다. 뉘 집 귀한 딸도 사람도 아닌 그저 일회성 소모품 내지는 한 번의 연회를 위한 용도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이 나라 미인의 쓰임새였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무자비한 임금, 실제인지 망상인지 모를 그의 욕망, 그 ‘인간 백정’ 같은 그의 하룻밤의 무료함과 그 한 순간의 불안과 환청을 달래주는 소일거리가 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미치도록 열심히 ‘충성’을 다해 매진한다. 그것이 관객을 한없이 불편하고 괴롭게 한다. 연산군(김강우 분)의 폭정과 채홍사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 ‘간신’ 얘기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간신'은 연산군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 임숭재(주지훈 분)와, 조선 팔도의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했던 사건인 ‘채홍’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 속 ‘채홍’은 연산군 11년, 장악원 제조로 있던 임숭재와 그의 아버지 임사홍(천호진 분)을 채홍사로 임명해 전국의 미녀를 색출해 궁으로 잡아들인 사건이다. 폐비 윤씨의 ‘피에 젖은 적삼’으로부터 권력을 움켜쥔 이 부자의 끔찍한 ‘왕을 위한 혓바닥’ 노릇과 끝없는 영화와 탐욕은 보고 있으면 어지러울 정도다.

말이 ‘채홍’이지 돼지몰이 식의 강제 징발이었다. 나라 안은 온통 쑥대밭이었고, 왕은 완전히 통제불능의 광기 상태에 빠져 있다. 사실 왕은 그저 생떼 쓰는 아기 같은 상태다. 그런 자가, 그렇게 미숙하고 심신미약인 자가 국정 책임자로 있다는 사실이 비극의 본질일 뿐이다. 비극의 디테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함과 화려함을 자랑한다. 끝 모를 엽기 행각이다. 이 모든 역사의 비극이 될 행사들을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칠 줄 모르고 추진하고 실행에 옮겨 어마어마한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은 밤낮 없는 ‘충성 경쟁’에 골몰하는 간신들이다. 임숭재와 임사홍 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궁궐에 그득한 그 모든 ‘신’들은 다 제 잇속에만 충실하다.

▲ 극중 설중매(이유영 분, 왼쪽)와 단희(임지연 분).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채홍사로 부임한 임숭재는 조선 각지의 약 1만 명의 미녀들을 강제로 징집하였고 이렇게 모인 여자들을 나라에서 관리하는 기생으로 구분하여 ‘운평’이라 칭했다. 또한 그 중 우수한 성적을 거둬 왕에게 간택된 자들을 ‘흥청’이라 하였다. 당시 사대부가의 여식, 부녀자, 천민 등 계급을 막론하고 헤아릴 수 없는 미녀가 궁으로 징발되었다고 한다. 또 채홍된 미녀들에 대한 왕의 총애가 곧 권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간신들의 권력 싸움이 채홍 간택 과정에 개입되기도 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이 채홍과 간택을 위한 미녀들의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각고의 노력의 과정이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의 혹독한 수련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기 전에, 그들 여인들의 저마다의 한이 워낙 깊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는 절박함 속에서, 마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왕의 눈에 드는 일이라는 듯한 수련 과정이다. 그래서 조금도 야하지 않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고, 끔찍한 집단 수용소를 보는 기분이다. 세트와 의상과 소품들의 아름다움마저, 그저 핏빛의 옅고 짙음 정도의 차이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피차 사는 게 옥살이 아니겠사옵니까?”라는 ‘소백정’ 그녀(임지연 분)의 말은 그 지독하고 뜨거운 간택을 위한 열망을 대변한다.

▲ 극중 임숭재(주지훈 분, 왼쪽)와 임사홍(천호진 분) 부자.(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녀들은 각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살육과 처단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갑자사화와 무오사화의 피바람도 지나간다. 의지도 욕망도 없는 그저 미쳐 날뛰는 왕을 위해 그녀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수련을 거듭해 결국 ‘침소’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 끝은 허무함을 넘어 뻥 뚫린 구멍만을 보여 준다. 야할 수 있는 온갖 요소를 보여 주지만, 영화는 실상 에로틱할 수 없는 분위기다. 너무나 처절하기 때문이다. 간신과 충신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수많은 대신들도, 정말이지 허무하고 어이없는 최후를 보여 준다. 미워할 자와 지켜야 할 자의 구분도 모호하다. 충신도 간신도 실상 보이지 않는다. 복수도 사랑도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어느 것 하나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토록 지독하게 뒤엉켜버린 의미망 속에서 뚜렷한 것은 다만 핏빛의 선명함뿐이다.

이 영화가 만일 지금의 우리 세상에 대한 반추라면, 그 또한 괴로운 일이다. 우리는 주춤거리고 있다. 공격해야 할 대상도 공격의 본질도 놓쳤다. 정작 부러운 인생은 그 어떤 칼날도 그 어떤 혁명이나 역모나 꿈마저 비껴가며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는 극중 유자광(송영창 분) 같은 인물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가 ‘그날’을 위해 칼날을 세우고 있다 한들, 그 칼끝이 노리는 목표는 분명한 것인가. 그 칼을 딛고 이루고 싶은 세상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피로 물들고 나도, 피의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간신도 충신도 모두 잊어버리고 놓친 것은 ‘백성’이었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