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누가 제발 멈추어 다오
[김원의 리얼몽상]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도발적이어도 그저 ‘미녀 1만’의 머리 수 하나를 채우는 소품에 불과하다. 뉘 집 귀한 딸도 사람도 아닌 그저 일회성 소모품 내지는 한 번의 연회를 위한 용도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이 나라 미인의 쓰임새였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무자비한 임금, 실제인지 망상인지 모를 그의 욕망, 그 ‘인간 백정’ 같은 그의 하룻밤의 무료함과 그 한 순간의 불안과 환청을 달래주는 소일거리가 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미치도록 열심히 ‘충성’을 다해 매진한다. 그것이 관객을 한없이 불편하고 괴롭게 한다. 연산군(김강우 분)의 폭정과 채홍사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 ‘간신’ 얘기다.
말이 ‘채홍’이지 돼지몰이 식의 강제 징발이었다. 나라 안은 온통 쑥대밭이었고, 왕은 완전히 통제불능의 광기 상태에 빠져 있다. 사실 왕은 그저 생떼 쓰는 아기 같은 상태다. 그런 자가, 그렇게 미숙하고 심신미약인 자가 국정 책임자로 있다는 사실이 비극의 본질일 뿐이다. 비극의 디테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함과 화려함을 자랑한다. 끝 모를 엽기 행각이다. 이 모든 역사의 비극이 될 행사들을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칠 줄 모르고 추진하고 실행에 옮겨 어마어마한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은 밤낮 없는 ‘충성 경쟁’에 골몰하는 간신들이다. 임숭재와 임사홍 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궁궐에 그득한 그 모든 ‘신’들은 다 제 잇속에만 충실하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이 채홍과 간택을 위한 미녀들의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각고의 노력의 과정이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의 혹독한 수련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기 전에, 그들 여인들의 저마다의 한이 워낙 깊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는 절박함 속에서, 마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왕의 눈에 드는 일이라는 듯한 수련 과정이다. 그래서 조금도 야하지 않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고, 끔찍한 집단 수용소를 보는 기분이다. 세트와 의상과 소품들의 아름다움마저, 그저 핏빛의 옅고 짙음 정도의 차이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피차 사는 게 옥살이 아니겠사옵니까?”라는 ‘소백정’ 그녀(임지연 분)의 말은 그 지독하고 뜨거운 간택을 위한 열망을 대변한다.
이 영화가 만일 지금의 우리 세상에 대한 반추라면, 그 또한 괴로운 일이다. 우리는 주춤거리고 있다. 공격해야 할 대상도 공격의 본질도 놓쳤다. 정작 부러운 인생은 그 어떤 칼날도 그 어떤 혁명이나 역모나 꿈마저 비껴가며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는 극중 유자광(송영창 분) 같은 인물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가 ‘그날’을 위해 칼날을 세우고 있다 한들, 그 칼끝이 노리는 목표는 분명한 것인가. 그 칼을 딛고 이루고 싶은 세상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피로 물들고 나도, 피의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간신도 충신도 모두 잊어버리고 놓친 것은 ‘백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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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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