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땅으로 사람을 짓밟은 역사

[복음과 문화]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1970

2015-04-23     김원

 새로 다듬어지기 전의 시편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소리를 들어주소서. 내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시편 130) 더 알아듣기 쉽게 풀이된 새 성경보다 입에 익숙한 이 말이 먼저 떠올라서다. ‘위령기도’의 대표적 구절인 이 간절한 기도, 살아있음과 죽음의 고비에 놓인 어떤 영혼의 절박함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이 빠져 있는 것이 ‘깊은 구렁’임을 알고 있는 이가, 자신을 구제해 줄 분이 누구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이가 온 힘을 다해 부르짖고 있다. 얼마나 크고 간절한 소리로 빌기에, 그 소리가 깊은 구렁을 넘어 저 높은 곳까지 닿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을까.

어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구절이 머리에 스쳤다. 우리들의 이 ‘깊은 구렁’, 이 구렁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형성되었나. 지금은 그 구렁 속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여전히 그 속에서 울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부르짖음으로 자비를 구해야 하는가.

▲ 영화 <강남 1970>, 유하감독, 2014.
유하 감독의 일명 '거리 3부작'의 결정판이라는 영화 <강남 1970>을 보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남 개발의 어두운 역사’쯤 되겠다. 원래는 영등포의 동쪽이라고 해서 ‘영동’이라 불렸다던 논두렁 밭두렁, 모래밭과 진창이던 촌구석이 ‘남서울 개발 사업’이라는 국책사업을 거쳐 ‘강남’으로 화려하게 탄생한 ‘원안’에 대한 이야기다. 몇몇 설계자들이 밀실에서 폭력배들을 동원해 어떻게 추진시켰는지 보여주는 끔찍한 압축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개발’이 대체 왜 필요했으며, 난데없는 개발 이익은 다 무엇에 쓰였는지를 영화가 극히 단순화시켰다는 점이다. 도식적일 수도 있지만 이 단순화는 어쨌든 ‘강남’이라는 욕망의 용광로 전체를 보게 한다. 군사독재가 무엇으로 유지됐는지 느낄 수 있다. 유하 감독은 너무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복잡해진 지금의 미로 같은 강남은 잊고, 정치와 돈과 땅의 삼각구도라는 핵심만 보라고 한다.

강남의 시초부터 지금까지의 ‘불패 신화’를 관통하는 그 비정상적인 생명력과 미친 성장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도 충분했다고 본다. 결코 국민 다수의 행복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결코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원주민들이나 원래의 주인들은 개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짐짝처럼 물건처럼 마구 이용당하고 수용당하고, 급기야 떼로 버려지고 관리 됐다. 권력은 그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고 앗아갔다. 권력자와 끄나풀의 관계망 속에서, 자기들끼리 ‘돌리고 돌려’ 땅값을 풍선처럼 잔뜩 부풀렸다. 이미 ‘원안자들’에게 돈 궤짝들이 배당된 후의 폭탄 같은 땅은 말없는 다수의 삶을 평생에 걸쳐 철저히 혹사시켰다. 내 집 한 칸 마련하고픈 소망은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에 저당 잡힌지 오래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탱크 몰고 한강다리 넘어온” 후에 내내 이 나라를 장악한, 처음엔 혁명으로 나중엔 이름뿐인 선거를 통해 영화를 누린 ‘혁명동지’ 3인방이 실제 주인공이다. 스토리 상 주인공은 고아에 넝마주이 출신인 의형제 김종대(이민호 분)와 백용기(김래원 분)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용도대로 사용되고 폐기물처럼 버려진다. 움막 같을지라도 ‘내 집’이 있어 살 부비고 살았던 그들은 포크레인 한 방에 지붕이 뚫리고 오갈 데 없어지고 만다. ‘개발’의 와중에 동네는 수용되고, 정치 깡패들의 행사에 끼여 한 버스를 타고 간 우연으로 그 세계에서 남보다 더 지독하게 밥벌이를 한다.

피와 황토, 흙 범벅의 아비규환 속에서 칼을 비롯한 연장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겨누는 것은 서로의 가슴이고, 찌를 곳은 늘 상대의 급소다. 처음엔 작은 이익을 위해 시작한 일이 점점 욕심이 커지고 각 인물들은 탐욕의 화신이 되어가면서 피와 복수의 쳇바퀴에 갇혀버리고 만다. 살기 위해 은인도 형제도 베어야 하지만, 결국 그 칼끝을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이 또한 권력자들의 ‘의도’대로다.

이 영화는 관객을 꽤 비감에 젖게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번안 제목이 더 어울리는 ‘아낙Anak'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개인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불행한 역사를 밟고, 여전히 건재하며 끊임없이 재기하는 권력자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에 왜 매번 강남을 둘러싼 불법 재산증식 논란이 등장하는지도 영화를 보면 지당해 보인다.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생성되고 실현되는지의 답은 하나다. 강남은 그들의 입맛대로 세워졌다. 적어도 영화 속의 1970년대에는 말이다.


김원 /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