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복을 받고 싶어하는가?

[기획-복 받으라고요?]

2015-01-12     유정원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분명 나는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세요”라는 덕담을 꽤 많이 건네었고 받아왔다. 그런데 막상 복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은 거절 없이 받아놓고, 날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복? 복이 뭐지? 내가 복에 대해 뭘 쓸 수 있을까?’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웬만해선 며칠 글감을 들고 고민하면 얼추 틀이 잡히는데, 이번에는 끝까지 글쓰기도 싫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막막하다는 속내를 고백하며 글을 시작하겠다.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의 일생은 초년, 중년, 노년으로 나뉘고 그때마다 복이 다를 수 있다.” 초년복이란 부모를 잘 만나서 잘 자라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혼인하고 새 가정을 꾸리고 맞이하는 중년의 복은 어떤 짝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자식을 해바라기하며 노년복을 확인하게 된다. 어머니는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는 말씀으로 중년복과 노년복을 너무나 명확하게 정의하셨다.

한편 “사람은 오복(五福)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서경>(書經) ‘주서’ 홍범편에 나오는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장수와 부, 우환 없는 편안함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다음이 예사롭지 않다.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것이고 ‘고종명’은 천명을 다하는 것으로, 종교적-윤리적 수행 및 실천과 맞닿아 있는 고차원의 영역이다. 역사를 보면, 덕과 천명을 온전히 실행하기 위해 애쓰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지탄과 박해를 받았다. 사실 평범하게 살다 평범하게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복은 누가 준다고 해도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김용길

복음서에도 이에 견줄만한 진짜배기 복(眞福) 이야기가 나온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그대들이 받을 상이 하늘에는 많습니다.”(마태 5,3-12; 루카 6,20-26). 예수가 가르쳐주신 이 말씀은, 귀가 닳고 못이 박이도록 자주 보고 들어왔으면서도 좀체, 아니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신비함과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는 불가사이를 장착하고 있다.

오복에서 유호덕과 고종명을 거부하거나 반납하고 싶듯이, 가난과 슬픔의 복이 찾아왔을 때 나는 기꺼워했던가? 나는 의로움에 굶주리다가 마침내 정의의 깃발 앞에서 박해를 달게 받는 삶을 살아왔는가? 자본주의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는 핑계로 나는 온유와 자비와 깨끗함은 저버리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받을 상은 (이 땅, 이 세상에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고) 하늘에는 많습니다” 하셨지만, 한치 앞도 분간 못하고 헛발질하는 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을!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내가 말로는 “복 받아라, 행복하게 살아야지” 떠들면서도 실상은 복에 무심했던 까닭이. 천박하기 그지없는 내 인간성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고서도, 여전히 진짜 행복을 온전히 끌어안고 살아갈 용기와 자신이 없는 가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유정원/평신도 신학자,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센터 실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