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 - 10] ‘세상과 이웃을 위한 찬양과 기도모임 코너’
성공회 민김종훈 신부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되 함께한다는, 현실에서 실행하려면 많은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인내가 필수 조건이어야 가능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니, 어쩌면 인간의 특성을 어려운 용어 하나 섞지 않고 가장 쉽게 설명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낭만보다 음식점과 술집이 가득한 유흥의 거리, 그럼에도 공원 벤치와 지하 소극장에선 여전히 덜 여문 꿈이 자라는 대학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따로 또 같이’를 실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대학로 성공회교회에서 열리는 ‘세상과 이웃을 위한 찬양과 기도모임 코너(Corner)’를 만드는 이들이다. 기도모임을 책임지는 네 명의 기획자 중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민김종훈(자캐오) 신부를 만났다.

▲ 성공회 서울교구 사제 민김종훈 신부 ⓒ한수진 기자

코너의 탄생을 되짚어 따라가 보니, 청년 세대가 줄어드는 교회를 걱정하던 젊은 성공회 사제가 있었다. 대한성공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청년층이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교회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자, 교회의 건강을 우려하는 위기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어린이 · 청소년 · 청년사목을 통합한 ‘젊은 또래사목’을 담당하는 민김 신부는, 우선 첫 번째 단계로 청년층을 회복해보자고 생각했다.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올해 2월 청년신앙운동 ‘길 위의 순례자’를 시작하고, 운동의 아지트로 ‘길 찾는 교회’를 열었다.

‘길 찾는 교회’는 기존의 교회와 ‘따로 또 같이’ 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다. 매주 일요일 오후 성공회 주교좌성당 지하 어린이 예배실에서 미사(감사성찬례)를 드리는데, 미사 참례자 구성이 파격적이다. 평균 참가자 10여 명 중 30%는 일시적인 냉담자, 30%는 이중 교적, 나머지는 세례를 받지 않은 비신자 또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이다. ‘이중 교적’으로 분류(?)된 이들 중에는 오전에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오후에 길 찾는 교회에서 미사를 보는 이가 있다.

민김 신부와 공동으로 미사를 기획하는 이지음 씨도 개신교 음악 디렉터 출신이다. 민김 신부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지, 교회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가 있지 않다”면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를 소유하게 하려면 기존의 경계에 담기지 않는 새로운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길 찾는 교회의 경계를 넘는 첫 작업이 ‘코너’ 모임이다. 민김 신부는 길 찾는 교회와 함께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를 드릴 다른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을 찾다가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미와 십자가 교회’의 오동섭 목사를 만났다. 성공회 미사 중에 드리는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는 천주교의 ‘보편지향기도’와 같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뗄 수 없는 것, 교회는 세상과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일치를 이룬 민김 신부와 오 목사는 찬양팀 ‘인 더 시티’를 초대해 공동으로 찬양과 기도모임을 꾸렸다.

▲ ‘세상과 이웃을 위한 찬양과 기도모임 코너’에서 개신교 찬양팀 ‘인 더 시티’가 찬양기도를 이끌고 있다. ⓒ한수진 기자

코너 모임의 정신은 홍보 포스터에 나와 있는 문구, ‘하느님 나라, 사회적 영성, 도심선교’로 요약된다. 이들은 하느님 나라는 특정한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있다고 고백한다. 또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는 있는 그대로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 자리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도시는 부정적인 공간, 혹은 남겨두고 광야로 떠나야 하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나름대로 창조하고 축복해 주신 곳 그대로의 회복이 가능한 공간이다. 골목길에 위치한 교회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도시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에도 교회가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다.

물론 마음이 맞았다고 일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니다. 민김 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이론의 올바름이나 정의로운 태도를 갖추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서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큰일이다”고 말했다. 신을 부르는 용어의 차이부터가 문제였다. 성공회는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고 쓰는데, 획 하나의 차이가 그렇게 합의하기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결국 ‘하느님’과 ‘하나님’ 대신 ‘주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배우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그분들은 성공회의 전례가 낯설고 성공회 신자들은 개신교의 찬양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런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예를 들어, 찬양팀이 노래를 선정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세요.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만족할 답을 찾을 거라 믿어요.”

민김 신부는 “매번 다음 달에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과 갈등을 갖고 있지만, 그것 또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매달 초에 열리는 준비 회의와 코너 모임이 끝나고 열리는 평가모임이 기획팀이 만나는 시간의 전부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해소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결국 갈등은 기도모임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는데, 민김 신부는 “이 영역은 하느님이 해주실 거라 믿고 맡긴다”고 말했다.

▲ ‘세상과 이웃을 위한 찬양과 기도모임 코너’에서 민김종훈 신부가 성찬 예배를 봉헌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찬양과 기도모임의 순서는 앞부분에 개신교의 찬양과 설교를, 뒷부분에 성공회 전례를 응용한 성찬 예배를 순서대로 배치했다. 지금은 서로 정신을 공유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젠가 형식에서도 서로 조화롭게 융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성체 때에는 신자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기도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소량의 누룩을 넣은 빵과 물을 섞은 포도주를 분배한다. 포도주에 물을 섞은 것은 관례적 의미 외에도 술을 조심스러워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민김 신부는 자신의 블로그에 코너 기도모임을 소개하면서 스스로를 “개량주의자가 아닌 ‘여럿이한걸음주의자’”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민김 신부에게 ‘여럿이한걸음주의’의 뜻을 물었더니, 자신이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거리가 곧 교회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단계로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길 찾는 교회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기존 교회로부터 ‘뭘 하려고 하는 거냐’고 의심을 받았어요. 예수에는 동의하지만, 교회에 동의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교회로 돌아오라는 거냐’고 의심을 받고요. 양쪽으로부터 계속 ‘개량주의자’라는 의심이 쏟아지더라고요.”

새로운 시대에는 신자와 비신자 혹은 무신론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지 않고,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민김 신부의 생각이다. 민김 신부는 교회의 안과 밖, 어느 한 쪽이 아닌 양쪽의 ‘경계선 위’를 택했다. 의심을 하면 하는 대로 갈등을 인정하고 상대를 타자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경계선 위에서 살아가고 싶어요. 교회 안에서 밖을 향해, 반대로 교회 밖에서 안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으면서요. 경계선을 넘나들다 보면 갈등과 비판에 놓이겠지만, 결국 (모두를 위한 교회를 바라는) 하느님의 꿈은 아무도 이기지 못할 거예요.”

민김 신부는 코너 기도모임이 교회와 거리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교파를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 하나임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한 기도가 천천히 행동으로 표현되길 바라면서, 민김 신부는 하느님 나라를 꿈꾼다.

“거리로 나서는 성직자와 신자들이 사회복음화를 위한 다양한 미사와 기도 모임으로 기존 교회 내에서 판을 흔들고 균열을 일으키는 노력을 해야 해요. 교회의 창문을 열어 기존의 신자들이 고민하고 새로운 숨을 호흡할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죠. 신자들은 헌금을 하면서 그저 사회복음화에 교회가 잘 쓰겠지 생각하지만, 그건 심하게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태도예요.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거라는 긴박감을 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코너 기도모임이 그런 판을 흔드는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젊은 또래의 사목”, “예수회 장로교”, “오동석 목사”로 보도된 부분을 각각 “젊은 또래사목”,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오동섭 목사”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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