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꽃섬 고개에 찬바람이 붑니다. 갑자기 추워지니까 단풍도 제대로 들지 못한 은행잎이 추풍낙엽입니다. 우수수 떨어져서 한 순간에 겨울나무가 되었습니다. 길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요. 아침에 식당 문을 열자마자 언 손을 호호 불면서 들어오는 경태씨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간밤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경태씨는 지난 겨울 내내 화도교회 옆에서 이불 하나 뒤집어쓰고 버텨냈는데 이번처럼 갑작스런 추위는 견디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몇달 전부터 젊은 부부가 식사하러 옵니다. 남자는 서른다섯 살이고 여자는 서른여섯 살입니다. 서울의 종각역에서 노숙을 합니다. 처음에는 젊은 부인이 임신한 줄 알았습니다. 옷을 많이 껴입어서 배가 나온 것처럼 보였다면서 몇 겹으로 입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에 걱정을 덜었습니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기 힘든 모양입니다. 좀 더 따뜻한 옷이 있으면 챙겨두었다가 젊은 부인에게 주곤 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참 착합니다. 민들레 국수집에서 파를 다듬거나 마늘을 까고 있으면 꼭 거들어주고 가곤 합니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 쪽파를 다듬고 있는데 젊은 부부도 일거리를 거듭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쪽방에서 둘이 지내다가 방세를 못 냈다고 합니다. 석 달 전부터 짐 싸들고 종각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감기에 걸렸는데 너무 추우니까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을 얻으려고 해도 보증금이 있어야 하고 보증금이 없으면 선불로 방값을 내어야 하는데 막노동 일거리조차 없으니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오늘도 아는 사람에게 오만원이라도 빌려볼까 했는데 빌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서울에서 방을 얻어야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면 오히려 더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방을 얻으려면 얼마쯤 있어야 하는지 물어봅니다. 두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돈이 전부 얼마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뿐"이라고 합니다. 백 원 뿐이라면 종각역으로 돌아갈 때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내가 장애 3급이기에 무임승차권을 두 장 받을 수 있어서 전철을 타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민들레의 집 식구인 영식씨네가 살고 있는 집에 방이 하나 나왔습니다. 집주인 할머니는 민들레국수집 주인장이 보내주는 사람이라면 보증금도 필요 없고 선불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젊은 부부와 함께 방을 보러 갔습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입니다. 기름보일러인데 기름은 한 방울도 없습니다. 화장실은 여럿이 함께 써야합니다. 그런데도 젊은 부부는 너무 좋다고 합니다. 집주인 할머니와 월 11만원에 방을 빌리기로 하고 돈을 드렸습니다. 계약서는 다음 날 쓰기로 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노숙하던 곳에 짐이 조금 있어서 가지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젊은 부부가 짐 가지러 간 사이에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채웠습니다. 90리터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불을 챙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베개가 없습니다.

저녁 무렵에 조그만 가방 두 개를 들고 젊은 부부가 돌아왔습니다. 이불과 수건 그리고 세숫대야와 걸레를 챙겨서 함께 들고 이사를 했습니다. 살림살이가 아직은 아무것도 없으니 우선 방청소하고 이불 깔고 잠만 자고 밥은 국수집에서 먹으면서 천천히 살림살이를 장만하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젊은 부부가 식사하러 올라오질 않습니다. 열한 시쯤 내려가 보았더니 세수하고 있습니다. 꿀맛처럼 단잠을 잤다고 합니다. 올라와서 밥 먹고 함께 중고 가전제품 장만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중고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가스레인지를 장만했습니다. 전기밥솥은 진열품으로 싸게 샀습니다. 냄비와 프라이팬을 사고 나머지는 국수집에 있는 것으로 챙겼습니다. 고마운 분이 베게 두 개와 이불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예쁜 그릇도 선물해주셔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피지 가스도 신청하고 용돈은 조금 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젊은 부부가 좀 살만하다 싶을 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면 그것이 빚 갚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합니다.

국수집으로 돌아오니 동전 43,050원이 담긴 돈 자루를 선물해주신 분이 왔다 가셨다고 합니다. 아마 두 돌을 맞이한 예쁜 아기가 15개월째부터 돼지저금통에 모은 돈일 것입니다. 옆집 이층 할머니가 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쌀 한 포 드렸습니다. 연세가 여든다섯 되신 용자할머니가 어제 국수집에 왔더니 없어서 다시 왔다고 합니다. 쌀을 한 포 작은 카트에 실어드리고 달걀도 한 판 실어드렸습니다. 내일 연탄 200장 들이시라고 했습니다. 그 비싼 연탄을! 깜짝 놀라십니다. 이곳은 연탄 한 장에 480원입니다. 200장이면 겨울을 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연탄 1,000장을 이웃에게 나눠드리라고 금일봉을 보내주셨습니다. 내일은 또 한 가족에게 연탄 300장을 넣어드리기로 했습니다. 500장은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넣도록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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