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하민]

▲ RER C를 타고 지나면서 본 에펠탑. 지하철 창문이 긁혀 있거나 벽에 그래피티가 되어 있는 모습은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하민
유난히도 추위가 오래 지속되던 빠리에도 여름이 왔다. 정신없이 3학년 기말고사를 치르고 대학교 건물을 나서면서 새삼 시간은 참 꾸준히도 흘러간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식 행사를 따로 치르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끼리 아쉬운 대로 따로 모여 파티를 여는 것으로 마지막인 3학년을 마무리 짓곤 한다. 공식적인 ‘학사모 행사’가 없는지라 괜히 싱숭생숭 마무리가 어딘지 모르게 아쉽다.

학사과정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로 몇몇 친구들과 모여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며 여유를 즐겼는데, 역시 주제는 여름방학 계획. 베를린으로 떠나기로 한 나 역시 기대감에 부풀어 여행 계획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 친구가 준비한 플라스틱 금메달을 서로의 목에 걸어주며 ‘교수님께 곤란한 질문 상’, ‘붉은 립스틱 소화 상’ 등 각자의 성향에 맞는 상 이름을 짓고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오랜 시간 같은 경험들을 공유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작년 여름에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인 친구와 함께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는 다른 프랑스인 친구를 만나러 베를린에 갔다. 동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는 우리에게 이곳저곳 구경을 시켜주며 빠리에 비해 깨끗하고 물가가 싸고 안전한 곳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느꼈던 이질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베를린과 빠리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놀라워하기도 하는 친구를 보니 문득 처음 빠리에 왔을 때 생각이 났다. 빠리에서 베를린으로 간 친구와 서울에서 빠리로 온 내가 느끼는 이질감이 결코 그렇게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주변 환경과 언어의 차이는 조금 더 크겠지만, 결국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서로 닮은 점들이 많이 보여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해 온다고 했지만 막상 혼자 자취방에 남아 맞이한 첫날밤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졌는지, 처음 들어선 교실 풍경이나 첫 몇 주간의 생활이 얼마나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모르는 것도 많고, 그래서인지 참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던 루이지애나 미술관 ⓒ하민
베를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아버지께서 영국에 계시던 시절 종종 차를 빌려 유럽 여행을 하곤 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된 표지판들을 보며 운전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조수석에 앉아서 앞으로 얼마나 더 부모님과 이런 장시간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자동차 뒷좌석에 아지트를 펼쳐놓고 별 생각 없이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던 잦은 여행이 이제는 세 사람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맞춰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다니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의 추천으로 찾은 곳은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이었는데, 그곳에 모인 작품들도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통유리가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한적한 전시실 내부를 걷다보면 왠지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밝은 공간이었고, 바닷바람과 풀냄새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듯하여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이태리의 칭께떼레라는 곳을 가고 싶어 하셨는데, 이태리 서해안에 다섯 마을이 모인 곳이라 산을 굽이굽이 넘어 해안가로 가는 길에 절경이 펼쳐졌다. 마치 뭔가 뜨거운 것이 살에 닿은 듯 강하게 느껴지는 햇살이 조금 수그러든 시간에 리오마죠레 마을의 가로등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함이 밀려왔다. 발코니에 나가 바다를 보니 어떤 사람은 서울에, 어떤 사람은 칭께떼레 마을에,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어딘가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딜 가나 모기에 잘 물리는 탓에 얼마 되지 않아 방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지만.

▲ 칭께떼레 마을들 중 리오마죠레 ⓒ하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의 배경이자 화가 프라고나르의 고향이었던 그라스라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 가게 된 것은 행복한 우연이었다. 오전에는 자전거로 프랑스 국토횡단을 하는 행사가 바로 그 마을을 지나고 있어 반나절을 옴짝달싹 하지 못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곳이었다. 18세기 귀족들의 사치품인 향기 나는 장갑을 만들어 팔던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서는 지금 ‘향기속의 낮잠’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어 오후에는 골목마다 가로등 사이사이 파이프에서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바닐라색 건물들이 즐비한 마을 전체가 은은한 꽃향기를 품었다.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하늘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다가 다시 나와서 그 차이를 느껴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골목 어귀에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져버렸는지 향기보다는 파이프에

▲ 고대 이집트에서의 향수 제조 과정부터 21세기 디자이너 향수들까지 진열되어 있고, 각양각색의 향수병들과 원료들을 보고 직접 향을 맡아볼 수 있는 그라스의 향수 박물관 ⓒ하민
서 분사되는 물안개를 보며 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문득, 진한 향기에 코가 마비되어 냄새를 맡을 수가 없듯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또한 너무 쉽게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는 순간이다. 골목 안으로 첫 걸음을 내딛고 향기를 맡았을 때의 그 기쁨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깨닫는다.

함께 하는 여행이 끝나고 어머니는 산티아고의 길로, 아버지와 나는 뉴욕을 가기 전 빠리로, 각자 할 일을 찾아 헤어졌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오래 붙어 있으면서, 반갑다가도 다투기도 하고, 다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뭉쳤던 우리 가족은 그렇게 또 각자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에 충실하다가 언젠가 함께 모여 멋진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설렘을 익숙한 사람들과 나눌 때의 기쁨, 그리고 이런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참 고마운 일이다.
 

 
 

하민 (도미니카)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일곱 살에 다시 영국으로 가서 3년을 살았다. 한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프랑스계 국제학교를 거쳐 프랑스로 유학 왔다. 고등학교 땐 이과였는데 언어와 미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술사를 공부 했다.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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