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신학]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배고파서 돌아오는 초등 1년생 아이를 위해 압력밥솥에 쌀을 씻어 앉혀놓고 손과 볼이 차가워진 아이에게 따뜻한 된장찌개를 끓여주려고 서두르고 있다. 친정집에서 얻어온 된장을 한 수저 듬뿍 넣고 표고버섯과 양파에 냉동 새우와 홍합, 멸치가루를 한줌씩 넣고 끓이다가 다시마와 떡국떡, 팽이버섯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뚝배기에 넣으면 아이들이 먹기 좋은 구수하고 달콤하고 시원한 찌개가 완성된다. 비록 상에는 얼마 전 김장하여 익어가는 알타리 무김치와 맨 김 구운 것, 된장찌개뿐이지만, 갓 지은 밥과 더불어 따뜻한 상차림이 된다. 겉옷과 가방을 벗기도 전에 "엄마, 배고파. 밥 줘"라고 말하는 아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맛있게 점심밥을 먹는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편인 나는 요리솜씨가 별로 없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음식이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흡족해하고, 그 음식을 내 손으로 하지 않은 경우라면 더더욱 고맙게 먹으니, 혼인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를 약간만 응용하는 정도에서 요리솜씨가 답보상태에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굶기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밥을 먹게 하는 편이고, 반찬은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만들기보다는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식으로 간편하고 단순하게, 혹은 맛없이 만든다.

간식도 제철과일과 떡, 여름에는 삶은 옥수수와 군감자, 겨울에는 군고구마와 군밤, 땅콩 등을 준다. 깨끗이 씻거나 껍질을 벗기는 기본적인 것과 타지 않도록 불을 조절하는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 물론 아주 가끔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부침개를 붙여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한 달에 두어 번 해주는 떡볶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며 즐겨 먹는다. 큰 딸애는 나중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요리 잘하는 아빠랑 살겠다고 할 정도다.

베긴회

12-14세기 중세에 유럽의 라인 강변을 중심으로 평신도 여성운동을 활발하게 펼친 베긴회가 있다. 이들은 교회가 요구하는 틀에서 벗어나 복음에서 영감 받은 대로 살고자 자발적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소박한 생활과 정결 약속, 육체노동으로 자기 삶을 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도움, 병원이나 요양원을 짓고 일함, 자기 고장 언어로 성서를 읽고 가르침, 엄격한 기도와 금욕생활 등이 베긴회 공동체의 특성이다. 그리고 특별히 성체신심이 깊어서, 성체만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음식과 특히 육류 섭취를 거부하는 대신 일생 다른 이들을 먹이는 일에 헌신했다고 한다.

중세의 가부장적 사회와 교회에서 당대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성관계에 대해선 거의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대신 음식재료를 모아서 요리하고 제공할 수 있었기에, 그녀들이 먹기를 거부한 것은 가족과 사회를 완전 당혹감에 빠뜨린 일종의 권력행사였다고 한다. 거룩한 음식인 하느님의 몸을 받아먹은 경험 후에 일상의 평범한 음식을 거부하면서 한 인격적 주체로서 단 하나뿐인 선택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체신심이 깊어져, 성체를 온 인류를 위해 부서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라보았고, 이 부서진 몸을 통해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한 자선사업과 사회봉사에 베긴회 여성들은 연민의 맘으로 헌신했다고 한다. 이는 당대 남성 신학자들이 주도한 사변적 스콜라 신학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먹는 것은 반기지만 요리하기는 젬병에다가 성체신심도 그다지 깊지 않는 나는, 일상 음식을 거부한 대신 요리한 음식을 다른 이들 먹이는 데 일생을 헌신하고 성체신심도 두드러졌던 베긴회 여성들과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성체를 모시면 왠지 더 뱃속이 헛헛하고 시장기가 돌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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