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6]

슬아, 혹시 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니?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서?

슬아, 학교에서 ‘삼권분립’에 대해서, 입법부 · 행정부 · 사법부에 대해서 배웠지? 우리나라는 그 중에도 사법부의 지위가 굉장히 높은 편이야. 예컨대 선진국이라는 일본과 미국, 서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처럼 법원과 검찰의 지위가 막강한 경우는 별로 없어. 사실 이건 어느 정도는 일제 식민지 경험 때문에 생긴 모습이란다.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들이 대개 사법부 지위가 높거든.

그러다보니 판사, 검사를 뽑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경우에 굉장히 높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사법고시를 없애고 ‘로스쿨’을 통해서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사법개혁’의 주장이 1990년대 초부터 주장되었고, 2007년에 소위 말하는 ‘로스쿨법’이 통과되었단다.

‘로스쿨법’에서, 교육부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법학전문대학원을 허가해주는 ‘허가주의’가 아닌, 기존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킨 가운데 각 지역별로 특정 학교들에 특정 인원수만을 배정해서 선발하도록 하는 ‘인가주의’의 방식을 채택했어. 예를 들면 서울대는 1년에 150명을 뽑을 수 있지만, 고려대는 120명을 뽑을 수 있고, 서울시립대는 50명을 뽑을 수 있게 된 거야.

이런 인가주의 방식 아래에서는 전국 각지의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생이 기본적으로 학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로스쿨 제도는 원래 목표했던 (출신 대학과 사법연수원 기수별) ‘학벌 타파’에 기여하기는커녕 ‘학벌 공고화’에 훨씬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져 버렸어. 이는 로스쿨 도입을 주장해 온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에 배치되는 것이었지.

더욱이, 로스쿨 도입 학교는 법학부를 폐지하게 되었는데, 로스쿨생에 비해 법대생이 훨씬 많은 점(서울대의 예 : 한 학기 등록 법학부생 1,200여 명, 로스쿨생 450명)에 비추어, 로스쿨 자체의 고비용뿐만 아니라, 로스쿨 도입 학교의 등록금이 전반적으로 인상될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어.

그래서 2007년 ‘로스쿨법’이 통과된 직후, 서울 지역의 14개 대학 법대 학생회장들은 서울지역법과대학학생회연석회의를 구성하고 ‘로스쿨법 반대 투쟁’에 돌입했었단다. 헌법소원도 냈지. 학생들은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거야. 첫째는 법대를 없애고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 둘째로 교육하는 교수도 그대로이고, 커리큘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사실상 법학부에서의 교육 과정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부 등록금의 세 배를 웃도는 등록금이 예정되는 고비용 제도로 인한 전반적인 대학 등록금 인상과 그 고비용 등록금 자체의 문제였지. 학생들이 내놓은 대안은 (일정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떨어뜨리는) ‘선발시험’인 사법시험을 (일정 점수를 넘기면 모두 합격하는) ‘자격시험’으로 바꾸자는 것이었고.

학생들 말고도, 로스쿨 인가에서 탈락한 몇몇 학교들에서는 이것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허가’받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었어. 그래서 ‘로스쿨법’과 관련된 헌법소원은 총 두 번(학생들, 학교들) 있었단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두 사건 모두 기각, 각하의 결정〔* 헌법재판소 2009. 2. 26. 2007헌마1262, 헌법재판소 2009. 2. 26. 2008헌마370, 2008헌바147(병합)〕을 내렸어.

요약하면, 장기적으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의 목표 아래 사법시험을 변호사자격시험으로 대체하는 것은 광범위한 입법 형성의 재량이 인정되는데,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기본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고, 당해 학교에서의 입학생 정원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거나 인가주의로써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고자 하는 대학의 수를 제한하더라도 이것은 입법 재량의 영역 내의 문제라고 판시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보면, 2010년 고려대 로스쿨 1학기 등록금은 988만 원이고 서울대 로스쿨은 700만 원을 조금 넘는단다. 2011년 1학기 서울대학교 법학부 4학년 등록금은 270만 원 정도이고.

슬아, 앞선 편지에서 대학 등록금 이야기를 했었지? 사실 ‘반 값 등록금’이 정말 실현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커. 우리나라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사립대학이 전체 대학 중 85%로 세계에서 사립대학 비율이 가장 높은 기형적인 상황이라는 점인데, 등록금 인하를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막대한 국가 보조와 세금 지원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 국민적 합의가 수반되어야 하니까(* 이범, <이범의 교육특강>, 다산에듀, 2009, 91쪽).

더욱이 2007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정당은 ‘반 값 등록금’을 공약하더니 대통령 재임 기간을 1년 여 남겨두고는 그것은 잘못된 공약이었다며 입장을 번복했어. 이에 많은 대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형편이고.

오빠가 로스쿨 이야기를 길게 쓴 건, 사실상 로스쿨과 같은 전문대학원 체제를 도입한 학교들이 대학 등록금을 낮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야. 학과는 폐지하고, 학부생 수는 줄이는데, 반 값 등록금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나아가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세 배 이상의 고비용을 투입해야 대학 졸업증과 법률가라는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는데, 그 수는 훨씬 많아져서 임금은 훨씬 적게 받게 되니, 사회 전체적으로는 고비용 · 고학력 인력이 대량 생산되는 거고, 이들이 공익보다는 사익에 관심을 갖게 될수록 일반 국민보다는 정부와 대기업 중심의 행정과 시장경제 체제가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겠지.

슬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안 그랬다가는 20대에 이미 ‘교육 빚쟁이’가 되어 버릴 수도 있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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