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008년 인권주일을 맞으며_김덕진

▲54년만에 진도 갈매기섬을 찾아온 해남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이 도착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사진출처-해남신문)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평가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막대한 경찰력을 동원하여 마을공동체를 강제철거했고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힘으로 누르며 듣지 않은 것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청산을 위해 법을 만들고 위원회를 만들어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 것이나 10년 동안 사형을 한번도 집행하지 않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분류하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 것 등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국회 과반수를 훨씬 넘는 거대 보수여당의 탄생은 사회 전반을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인권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많은 분야에서 절박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반인권적인 법과 제도의 제정 및 개악을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폐지를 필두로 한 과거청산관련 위원회 통폐합 법안을 저지하는 것과 국정원 강화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악과 테러방지법 제정 등 ‘국정원 강화 3대 악법’은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집회와 시위를 사실상의 사전허가제로 바꾸려는 집시법 개정,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여 노동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 올 고용허가제 개정, 강제퇴거와 단속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데이터로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출입국관리법 개정, 사이버상 토론과 여론생성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비정규직을 고착화시키려는 비정규직보호법 개악 시도 등은 인권운동 진영 전체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할 매우 심각한 과제들로 꼽힌다. 이밖에도 사이버모욕죄 신설, 불법집단행위에 대한 집단소송법 개정 등이 저지해야 할 입법과제들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경제가 침몰하여 빈곤이 확대되면 더 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틈만나면 대운하를 추진하려고 눈치를 보고, 수도, 물, 가스, 의료, 교육 등 사회공공재를 모두 기업과 외국에 팔아넘기려고 하면서 어떻게 국민을 위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힘으로 국민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모든 분야에서 시작된다. 박물관에 들어갈 뻔 했던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나 학자들과 통일운동가들을 구속하고 있고 검찰과 경찰은 공안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집시법 위반이라고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수백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정당한 파업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업무방해로 구속시키는 것이 이명박식 법치주의다. 법치주의란 인간의 존엄과 국민의 자유·평등·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신성한 법’을 사용하고 있다.

벌써 스물일곱 번째 인권주일을 맞이하는 한국 천주교회는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나선 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인권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와 인권을 혼동하여 한국 천주교회가 인권향상을 위해 애썼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복지활동과 이주노동자 사목 등은 다른 종교의 그것과 비슷하게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노인, HIV 감염인, 이주노동자 등을 주체로 내세우지 못하고 교회의 그늘 안에서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볼 때이다. 다행이 지난 11월 12일 마석과 연천 등에서 벌어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단속에 대해 성명을 내어 반인권적 단속을 비판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이 법치주의이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담화문 등이 위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등으로 대표되는 교회기관 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의 문제, 교회 운영 대형 사회복지시설들의 ‘수용시설’화 등은 시급히 그 변화의 계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일반기업들처럼 이윤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실제로 실천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인권옹호를 위해 투신하라는 것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근본정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8년 한해를 정리하며 이명박 정부의 첫해가 저물어간다는 안도감과 아직도 4년이나 남았다는 절망감이 교차한다. 이명박 정부 앞으로 4년, 인권이 위태로워지고 평화가 죽어갈지도 모른다. 결국 또 다시 믿을 것은 국민의 힘뿐이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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