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정시설을 교정하라!_김덕진

교도소 담장에 나팔꽃이 한창이다. 이곳도 사람이 살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11월 ‘감옥인권자원활동가팀’을 구성하였고 현재 감옥인권연속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인권운동의 오래된 주제인 ‘감옥인권’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아무리 감옥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감옥은 ‘가두어 두는 기능’만 하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 법에 따른 형량을 선고받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징역형이란 ‘신체가 구속된 상태에서 주어진 노동’을 할 뿐이다.

‘교정시설’이 아니라 ‘감옥’

그들이 춥고 배고프게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1인당 0.5평도 할당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루 종일 햇빛을 보거나 실외운동도 하지 못하고 아플 때 의사의 시의적절한 진료도 받을 필요가 없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열악했던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이지 유엔의 ‘피구금자최저기준규칙’에도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전국 48개의 ‘구금시설’을 법무부가 원하는 대로 ‘교정시설’이라고 부르지 않고 ‘감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감옥 안의 사람들은 그동안 죄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었던 이들이고, 수많은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또, 자유가 통제된 상황에서 국가라는 거대권력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노출되어 있었다. “감옥 수용자들의 인권상황이 곧 그 나라의 인권 수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가려진 곳에서 억압받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10월 4일 오전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서 수감 중이던 감호자 강모(37)씨가 충수돌기염으로 인한 복막염 때문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당시 같은 병사에 있었던 동료 감호자들의 말에 따르면 강씨는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심한 복통을 호소했고, 구토 시 짙은 색의 토사물이 나와 의무관에게 확인까지 시켰다고 했다. 이후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확인한 의무관의 조치는 소화제와 진통제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1990년대 이후 충수돌기염, 흔히 맹장염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어 발병 즉시 감호소 측이 적절한 조치만 취했다면 강씨가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구금시설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건들 중에서 구금시설 의료문제가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위생 조치는 1년에 서너 번 소독약 뿌리는 게 전부

대부분의 구금시설 수용자들은 1인당 0.5평 정도를 허락받는 좁은 생활공간에 집단수용되어 있다. 화장실이 곧 목욕실이고 설거지 공간이다(일부 각 거실에 싱크대를 설치하기도 하였으나 물이 튀고 방이 좁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위생에 관한 조치라고는 1년에 서너 번 분무기에 소독약을 담아 화장실에 뿌리는 것이 전부이다. 온수로 하는 목욕은 동절기(10~4월)에만 주 1회 가능하고, 운동은 평일에 한하여 하루에 고작 30~40분 정도 할 수 있다.

이것도 빌딩형 구금시설들(인천구치소, 수원구치소 등)에서는 좁은 실내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음식물의 종류는 예산 등을 이유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 질과 영양의 고른 공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음식물과 식수의 운반 및 공급과정이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있고 담요와 의복의 세탁 역시 수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자들은 질병의 감염에 노출되기가 매우 쉽다. 체계적인 수용자들의 건강 및 위생관리가 절실하다.

교정공무원들의 ‘인권의식 향상’은 구금시설의 모든 문제 해결의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구금시설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계구사용, 징벌 등을 이용하여 얼마나 심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요즘 교정공무원들은 옛날과 다르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법을 전공했다고 해서 인권의식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교정공무원들을 여러 수용시설에서 겪어 보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원칙’과 ‘규정’만을 내세우며 수용자들에게 물리적 고통보다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수용자들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마음으로 대하는 것에서부터 ‘수용자들의 인권’이 시작되는 것임을 교정공무원들이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교정공무원들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기본적인 인권 감수성을 가지지 않으면 수용자들의 인권은 말을 꺼낼 수도 없는 것이다.

 15척 담장 안의 교도소 권력

우리는 흔히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수용자들의 항변에 대해 “죄인이 말이 많다”거나 “죄의 대가다"라는 말을 하며 수사과정이나 형 집행 중에 일어나는 가혹행위나 부당한 권리의 침해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사회적 묵인 속에서 국가는 아무런 제한 없이 15척 담장에 둘러싸인 교도소에서 마음껏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국가는 법률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만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다.

죄를 짓고 형벌을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빈번한 인권침해를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인권을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인권과 그렇지 않은 인권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는 교도소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사고를 갖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형사정책적으로 분배의 불평등, 소외, 분쟁해결 수단의 부재 등의 사회적 요인은 범죄발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범죄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범죄 사실 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데에는 사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범죄가 빈곤으로 인해 생겨난다. 부의 불공정한 분배로 인한 가난의 반복, 그로 인해 생겨나는 교육의 부족, 가정의 불화 등 사회적 요인이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구성원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많이 가졌고, 더 가지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문일 수도 있다. 결국 이들을 가두어 두는 것만으로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국 47개의 구금시설에 4만 7천여 명의 수용자들이 있다. 여전히 갇힌 자들에게는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중 누군가가 또는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담장 안에 갇히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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