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배선영]

무모한 여행을 떠나다

ⓒ배선영
사는 게 지겹고 힘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나’로 사는 것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그 시절, 변화가 필요했다. 다르게 살고 싶었고, 전혀 다른 삶을 갈망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삶과 변화를 꿈꾸며 2008년 가을,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 도착해서 묵을 숙소 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막상 가보니 이렇게 대책 없이 여행을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짜온 코스대로 빡빡하게 움직였다. 나는 갈 곳도, 볼 것도, 할 것도 정하지 않은 채 3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을 혼자 견뎌야했다. 파리의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최소 3개월은 채우고 올 심산으로 일도 그만두고, 용감함을 넘어 무모한 생애 최초, 그것도 혼자만의 여행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모한 여행을 통해 나는 생애 처음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약함, 무력함을 어찌하지 못해 의지하려고 만든 것이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면서, 나는 점점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둥근 막이 나를 둘러싸고 ‘보호’해주는 것 같은 기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하지만 정말 나는 느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으면서 느낀 애정으로 치유를 받은 나는, 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기운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그 성스럽고 신비로운 기운에 대해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이 무모한 여행을 어떻게 감행해야하나 덜컥 무서워지는 순간이 수없이 많이 찾아왔지만, 이 ‘보호받음’과 여행 중에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위안을 받다

집으로 돌아온 후, 기대와는 달리 변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내 삶은 여전히 숨 막혔고 우울했다. 여행 중에 느꼈던 보호받는 듯한 신비로운 기운은 더 이상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기운을 다시 찾고 싶었고, 그래서 종교를 가지는 것을 새해 결심으로 삼았다.

어떤 종교를 가질 것인지 정하지 않은 채 동네에 있는 교회들을 탐방하기로 결정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가장 가깝고 수가 많았기에 가기 쉬운 곳이 교회였다. 교회 두 곳의 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은 한 달 정도 다니기도 했다. 나와 맞지 않은 교회를 고른 것일까. 교회를 나갈수록 갈증만 더해졌다. 결국 다른 교회를 물색하러 나갔다.

토요일 저녁,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중에 성당을 발견했다. 마침 미사 시간임을 확인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조용히 뒤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성전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의 ‘언제나 너와 함께하겠다’라는 뉘앙스의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함께 있겠다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미사는 어려웠다. 앉았다가, 섰다가, 무릎을 꿇기도 했고, 계속해서 뭔가를 읊조려야 했다. 따라가기 힘들었다. 의외로 젊은 신부님(나중에 알고 보니 보좌신부님이었다)의 담백한 강론과 멋진 모습에 매료되어 또 오고 싶었다. 미사가 끝나고 내려와 교회에서처럼 부담스러울 정도의 반김과 관심을 기대하며 1층을 서성거렸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다시 가볼까 망설였지만 어렵고 낯선 느낌이 강해 선뜻 성당으로 향해지지 않았다. 결국 새해 결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당에 가다

종교에 대한 고민은 잊은 채 나는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다. 하지만 사고가 생겨 얼마 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고 때문에 수술을 받은 후 회복 기간이라 일을 할 수도 없어 동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2년 전에 가보았던 성당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무작정 성당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계획으로 가득찼던 호주에서의 삶이 무산되고 절망에 빠져있던 내게 성당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한줄기 빛과 같았다. 3년 전, 유럽 여행 때 느꼈던 신비로운 기운이 떠올랐다.

처음 친구를 따라 성당에 간 날은 인천교구 청년의 날이었다. 본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청년들만의 미사를 드리는 곳에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게 어색했지만 즐거웠다. 신부님은 청년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인생을 즐겨라”라는 내용이 성경에 있는 것을 아느냐며, 하느님 안에서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살라고 강론하셨던 것이 인상에 남았다.

미사가 끝나고 본당 친구 중 한 명이 성경 모임에 초대했다. 나는 신부님 말씀으로 인해 성경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그 말이 무척 반가웠다. 또 성당에 갈 날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성당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인지, 낯선 곳에 뻔뻔하게 잘도 다녔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들은 본당의 청년 모임도 아닌 큰 행사에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온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예비신자 모임에 나가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일 아침에는 예비신자 교리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청년 미사에 나갔다. 성당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기대보다 훨씬 재밌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성경 모임이었다. 기존에는 듣지 못했던 교회에 대한 비판과 다양한 관점으로 강의를 해주던 친구 덕분에 신선함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예비신자 교리와 청년 미사, 성경 모임을 하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정말로 신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어떻게 성당에 오게 되었는지 묻곤 한다. 서른 넘어 자발적으로 종교를 갖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가보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당을 가게 되기까지 참으로 다이나믹(?)한 일들을 겪은 것 같다. 집 근처에 있는 성당에 나가는 것이 뭐가 어려운 것이겠느냐마는, 매주 주일마다 미사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기꺼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성당에 오게 된 것이 운명이었다느니 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우연의 연속에서 이루어진 어떤 이끌림이 있었다는 느낌은 들지만, 결국은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다.

처음 나에게 종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신비로운 기운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내 삶 내내 그런 기운이 나와 함께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그런 보호받음의 기운은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어떤 믿음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내가 가는 길이 이로운 길이라는 것. 나의 선택이 어떤 인도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아직 나는 교회 안에서 무엇을 찾아야하는지 고민 중이고, 내가 왜 계속 가톨릭 신자가 되려고 하는지 답을 찾는 중이지만 글의 제목에 대한 대답으로 이 지지부진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배선영 (다리아)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하며 30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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