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수녀의 이콘응시]

 

En Cristo
루이스 수사를 기억할 것이다.(부활편 참조)  그날 많은 대화를 하는 중에 한국말을 배우면서의 고충과 황당한 일들을 나누다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주는데 엄마였다. 후덕하게 생긴 그의 엄마 사진을 보는 순간 이미지가 많이 비슷해서인지 과달루페 성모님이 생각났다.

얼굴에 화장기도 없고 치장하지 않아도 엄마이기에 아름답다. 어릴 때 친구와 싸우다 엄마가 나타나면 그 뒤로 숨어 기가 살아 못했던 말들을 쫑알거리고 혀를 내밀며 놀려 주곤 하였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버틸 힘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광고에서 “집에 큰 냉장고가 있고 좋은 TV가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어도 엄마가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다”는 어린 아이의 말처럼 엄마의 존재는 우리의 전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달루페 성모님이 모셔져 있는 멕시코 땅은 축복받았다. 가장 든든한 빽을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보 성인이시다. 이 그림은 사실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그림의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나 해야 할까. 아님 성모님께서 직접 그렸다고나 해야 할까. 어떻든 이 글을 읽고 그대들이 생각하시길 ...

후안 디에고
성모님은 후안 디에고라는 가난한 농부에게 발현하시어 기념성당 짓는 일을 주교에게 말하라고 하지만 주교는 허름한 그를 믿지 않고 증거를 가져 오라 한다. 힘없이 돌아와 주교의 말을 전하는 그에게 다음날 성모님은 언덕에 가서 꽃을 가져오라 말씀하시는데 겨울의 날씨에도 아름다운 장미가 만발한 것을 본 후안 디에고는 걸치고 있던 망또에다 한아름 담아 성모님께 갖다 드린다.

그것을 주교에게 가져가서 보여주라 하시기에 그는 달려가 주교에게 성모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망토를 펼쳐 보이자 장미가 쏟아지면서 거기에 바로 이 성모님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후 주교는 성모님의 말씀대로 그곳에 성당을 지었고 망토는 기념성당 안에 안치되었다. 여러 가지의 수난에도 그림은 손상없이 보존되어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교황청은 물론 기관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그림에 대한 분석을 하였지만 물감의 성분을 밝히지 못하였고, 망토의 수명은 오래가야 30년이라는데 50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 바로 기적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모님의 눈동자엔 후안 디에고가 있다는 것!!!!!

자! 그럼 성모님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자. 망토엔 발현 당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옷에 있는 9송이 장미 문양은 9유목 민족을 뜻하며, 달은 2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멕시코라는 말은 나우아어로 ‘달의 배꼽’이라는 뜻으로 성모님께서 멕시코에 계시다는 뜻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신다는 의미가 있다. 기타 여러 가지의 상징적인 것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그들과 지금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다.

유럽에서의 성모님 모습과는 다르게 인디오(원주민)의 피부와 유순한 얼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의 위로를 받게 한다. 멕시코 여인들은 임신을 하면 허리에 띠를 둘렸는데 바로 성모님도 임신한 여인의 모습으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계신다.

우연히도 성탄을 며칠 앞둔 바로 12월 12일이 과달루페 성모님의 축일이다. 현재 멕시코 시티의 떼뻬약 언덕 아래의 바실리카 성당에 이 그림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날은 온 아메리카 대륙이 축제로 요란하다.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소매치기, 걸인들에게도 대목이다!

특히 이날 바실리카 성당은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다 출연해 성모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른다. 처음 이 축제를 TV로 시청하다 한국과 다른 점을 보게 되었다. 출연한 모든 연예인들이 관중을 뒤로하고 오로지 성모님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인사도 성모님께 먼저. 다음에 관중에게. 사실 관중이 보내는 환호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 와서 보니 성모의 밤이나 성탄 때 모두가 신자를 향해 노래 부르고 손유희나 무용을 하지 신자를 뒤로 하고 성모님이나 구유를 바라보며 축하의 노래등을 부르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는 단체마다 본당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의 반응에 예민하다. 오직 성모님께 바친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그들이 잘했다고 하면 모두들 기분이 좋아 무언가를 한 보람으로 훌륭한 행사(?)를 치루었다고 생각한다.

바실리카 성당 입구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NO ESTOY YO AQUI QUE SOY TU MADRE?..." (...너의 엄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님은 인자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 안에는 “무엇을 두려워 하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는 의미가 담겨 있다.

늘 경쟁 속에서 방향을 모른 채 치닫는 우리에게 성모님의 이 말씀은 사막에서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누가 감히 우리에게 이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바로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엄마이신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 우리에겐 바로 이런 엄마, 어머니가 계신다.

과달루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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