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지난 주 필자가 소속된 학술단체 세미나에서 사회를 본 일이 있다. 주제는 요즘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종교 간의 대화였다. 세미나 내용이야 필자에게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끝나고 나눈 이야기는 여운이 많이 남았다. 나누고 싶은 것은 이때 여운을 남긴 이야기이다.

저녁 식사 후 세미나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말씀은 좋으신데…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기 종교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시니까요.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습니다. 천주교에 입교할 때 이 종교가 최고라고 생각했고, 이제껏 성경도, 교회도, 신부님들도 다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으니까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본당에서 만나는 신자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끔 본당에 강의오시는 분들이 이런 사정을 모르고 당신들의 신념을 거리낌 없이 토로하다 뒷말을 듣곤 하지요. 솔직히 어느 것이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신앙을 상대화시키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들은 혼자 또는 이런 자리에서나 말씀하셔야지 본당에서 그러시면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필자도 종교 간의 대화는 당위론에 불과하지 실질적인 진전은 적었다고 평가하는 입장이다. 종교는 한번 각인되면 하드 디스크처럼 새로 포맷도 안 되고 덮어쓰기만 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다. 종교를 자기 목숨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나마 포맷도, 덮어쓰기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들에게 종교간 대화는 기껏해야 ‘평화로운 공존’을 기대할 따름이지, 그 이상의 진전을 바랄 수 없다. 한국종교계에서도 종교 간 대화가 비교적 오래 진행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연대사업이나 활동뿐이다. 이런 현실을 늘 보아왔기에 필요성은 긍정하면서도 효과에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필자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종교간 대화 무망론이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문제이다. 즉 앞의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주교에 실망하신 분들은 교회를 떠났거나 쉬고 있기에 남은 분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은 신자들 대부분이 이런 분들인데 상대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교회 안에서 무슨 말과 일을 할 수 있는가가 필자 스스로에게 던져 본 질문이다. 물론 이 질문 역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제 필자는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과 본당이나 교회기관에서 강의할 때 다르게 행동할 경우가 많으니까. 스스로는 ‘사도 바오로’처럼 상대의 믿음과 처지에 따라 그리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많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궁금하다. 앞뒤를 잘 살피지 않으면 사제들도 쉽게 ‘이단’이 될 수 있는 이 영역에서 신념을 따르고 계신가? 목자의 마음으로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주고 있는가? 한동안 신학과 사목을 구분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요즘 다시 종교간 대화가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되니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과연 나는 훌륭한 지성인이면서 동시에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 조언을 부탁드린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 문화영성대학원 초빙교수,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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