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 MBC 수목극 ‘여왕의 교실’
모든 상벌은 조건부다. 칭찬도 애정도 신뢰도 전부 조건부다. 담임선생님 말씀이 곧 법이고 철칙이다. 다른 선택 가능성은 단 하나, 낙오자가 되기를 무릅쓰는 것뿐이다.

못 견디겠으면 전학가라고? 전학의 가능성은 진작 차단당했다. 학부모들은 담임의 능력과 자질에 연신 감탄 중이다. 부모들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선생님, 내 아이를 위한 ‘맞춤’ 선생님을 만난 듯 호들갑이다. 입시 위주의 이 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길을 ‘제시’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담임으로 둔 건 천운이라 여기는 학부모들이다. 지원군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만 우왕좌왕하다 지쳐간다. 부모를 원망하라? 친구들을 경계하라? 오직 한 사람, 담임만 따르라? 정말, 하라는 대로만 하면 모든 게 편해질까?

MBC 수목극 <여왕의 교실> 속 교실은 삼엄할 정도로 ‘담임 말씀’이 지배하는 곳이다. 일본드라마인 원작처럼 살벌한 군대식 상명하달 혹은 계엄 상황이다. 6학년 3반으로 배정돼 마여진 교사(고현정 분)를 담임으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24명 아이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다. 마 교사의 명분은 분명하다. 이 사회가 1%만을 위한 곳이며, 입시란 원래 상위권 몇 명만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잘라내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거듭 강조한다. “너희 부모들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으로 살든가, 내 특훈을 익혀 세상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뜨든가!

이 교실에 빠져 있는 것은?

이 교실에 빠져 있는 근본 원리는 무엇인가. 교실이 교실다워지려면 무엇부터 회복해야 하는가. ‘마녀’라는 별명이 오히려 애칭처럼 보일 만큼 실로 무시무시한 폭군인 마여진. 그러나 반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주위 선생님들도, 갈수록 마여진에게 항의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서열과 순위가 중요한 현행 입시제도가 엄존하는 한, 마 선생은 옳다. 절대적으로 옳다. 1등에게 힘을 실어주고, 상위권에게는 1등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자극제를 주는 이런 방식에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실 일선 학교 6학년은 대개 사춘기를 겪느라 내적 갈등이 꽤 있는 나이다. 성적 말고도 아이들의 고민은 많다. 그래서 지도하기 어려운 학년이다. 아이가 6학년이 되면 부모들은 걱정이다. 담임을 웬만하면 안 맡고 싶어 한다는 소문도 꽤 그럴싸해 보인다.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낀, 몸은 많이 자랐지만 아직도 어린이의 모든 규범을 따라야 하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의 내면도 꽤 복잡할 것 같다.

그런데 가혹한 ‘담임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6학년 3반 교실은 의외로, 아이들이 ‘어린’ 상태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열과 복종이 지배하는 이 교실에, 성장기 소년 소녀로서의 정체성 고민을 하는 학생은 생겨나기 어렵다. 복종이냐 반항이냐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하거나, 왕따 문제로 각종 소란은 빚어지지만, 고민의 수준은 정해져 있고 귀결점은 늘 ‘담임’으로 모아진다. 이보다 더 단순하고 획일적인 ‘성장통’은 없다. 절대자가 지배하는 교실이 얼마나 단선적인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절대적으로, 단순한 권위

마여진 교사는 첫날 첫 시간, 첫 절차부터 무시했다.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선거? 우리 반은 그런 쓸데없는 일은 안 한다. 성적순으로 반장을 뽑는다. 꼴찌 두 사람이 맡는다. 꼴찌 반장이 모든 궂은일은 도맡아 하고 나머지는 공부에만 치중한다.”

담임이 정한 기준은 명쾌할 정도로 간단하다. 1등, 우승, 국제중, 만능……. 그래놓고도 ‘반항’하면 기준이 변한다. 심지어 100점 만점의 1등조차 이 규칙으로부터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 대들면 꼴찌반장을 해야 한다. 선생님의 권한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진다. ‘법’은 수시로 변칙 운영된다. 교실의 ‘법’은 명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마 교사의 심중(心中)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 이게 유일한 수칙은 아닐까. 결국 약자의 굴욕은 그 비참함의 바닥이 없고, 굴종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나한테 반항할 땐 그 정도 각오는 한 거 아냐?”

사실 <여왕의 교실>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오뚝이 같은 긍정의 캐릭터 심하나(김향기 분)다. 특별히 문제될 게 없어 보이는 가장 무난한 아이로 보였던 하나는, 부러진 연필로 인한 첫 ‘꼴찌반장’ 이후 심하게 변화를 겪는다. 어쩌다보니 반 전체를 위해 아니, 친구들 하나하나의 고충을 대신 짊어지고 담임과 싸우는 듯한 용감무쌍한 캐릭터로 변해가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대 울지 않는 하나. 그러나 어른 시청자 입장에서 하나는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불가사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피소드가 늘어갈수록 하나가 얼마나 관념적인 캐릭터인지 느껴진다. 6회까지 방영된 현재 시점에서, 이미 드라마의 축은 하나의 수난기로 모아지고 있다. 고통 받을수록 강해지는 캐릭터, 희망을 주변 친구에게까지 전하는 캐릭터, 그러나 현실에서 심하나처럼 굴었다가는 어떻게 될까. 죽을 것 같다. 저러고 과연 살 수 있을까.

모든 쓸데없는 다양한 시도를 응원한다

어떤 의미에서 마여진 교사는 ‘흔한’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사회 곳곳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곳에 널리 분포되고 편재되어 있는 존재 아닌가. 목소리 하나로 한 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전체주의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자기 말에 아무도 반발하지 못하게 하는 권위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은 식상할 정도로 흔하다. 고현정처럼 블랙 슈트를 차려입고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각’을 잡는 모양새가 아닐 뿐이다.

인정한다. 극중 심하나도 오동구도 김서현도, 현재 뼈아프게 깨닫는 중이다. 나 하나의 힘으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물론이다. 아무리 작은 어항 속 같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의 대세를 돌려놓는다는 건 힘들다. 그래도, 그래도 해야 한다. 내가 비겁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적어도 나 한 사람에게만은 당당하기 위해서. 이번에 비겁하게 숨어버리면,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비겁한 내가 나를 짓눌러버릴 테니까.

이미, 거역은 시작되었다. 연대도 시작되었다. 부서지고 망가지면서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보기로 한 아이들은, 쓸데없고 다양한 헛짓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그 반대쪽의 음모와 협잡과 배반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살아남으라, 자신의 신념을 꺾기보다는 세상을 설득하는 게 차라리 쉽다고 믿는 자들이여. 그 헛꿈과 헛수고만이 여왕의 이 완벽한 교실을 흔들어 놓을지니.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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