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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갈 길은 ‘드러나게 평범하게’[파블로의 필름창고]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 감독, 2013년작

   
▲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 감독, 2013년작
최근 험악한 남북관계를 지켜보면서 지난 10년 민주정부 기간 동안 얼마나 남과 북이 화기애애하게 지냈는가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성큼성큼 서로의 거리를 좁혀왔으나 다시 오래전 그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회귀해버렸다.

남북의 대치 상황은 상대방을 향한 공작과 정보 쟁탈을 위한 특수집단을 양성하게 했다. 이른바 간첩, 우리 사이에서 같이 떠들고 웃고 밥 먹고 거닐지만 어느 순간 우리의 나라와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하는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가끔 시청각실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썰렁한 걸 많이 보여준다. 한번은 간첩에 대한 영상물을 보는데, 목사가 간첩이란다. 이유인즉 담배를 피우는 꼴을 보아 목사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러잖아도 얼마 전 합정동 로터리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한 아주머니가 예수 믿으라고 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예수 안 믿는다고 생각했나?).

또 <간첩 잡는 똘이장군> 같은 것을 보고 자랐다. <간첩 리철진> 같은 영화를 통해서 인간적인 모습의 간첩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또 남도 똑같은 공작을 준비했다는 <실미도> 같은 영화도 나왔다.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져…… 남한의 바보백수로

비파곶 5446 특수부대에서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원류환은 남파된다. 아주 비장하게 남한으로 보내지지만 고작 임무가 달동네에서 바보 역할을 하면서 동태를 보고하는 것이다. 내려지는 지령도 적당히 콧물 흘리고, 계단에서 구르고, 주기적으로 길거리에서 똥이나 오줌을 누는 것. 그것도 상부의 명령이라고 아주 열심히 수행한다. 그러면서 고정간첩인 집배원 아저씨와 내통한다.

어느 날 훈련 받을 때 최고의 경쟁자였던 리해랑이 이 동네에 나타난다. 동구, 원류환은 바짝 긴장하고 리해랑의 동태를 살피는데, 글쎄 리해랑에 대한 당의 지령은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이라니. 또 잠시 뒤에는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원류환을 동경하는 리해진이 나타나니. ‘이 동네가 그렇게 중요한 지역인가’ 할 만하다.

   
▲ “남한의 최하계층 마을에 잠입하여 자연스레 그 일원이 되고 그들의 생활 형태와 정치적 군사적 성향 및 이념 등을 첩보, 보고하라!” “내래 인민의 락을 보여주갔어!”

하여튼 들짐승처럼 길들여진 이 셋은 당의 명령을 기다리며 바보, 뮤지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분해 남한의 일상 속으로 젖어든다. 남북관계가 데탕트로 전환되면서 5446 부대는 껄끄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이 부대를 총괄하는 리수혁 대장은 연어를 불러들이라 한다. 연어,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 하지만 연어를 불러들여 혁명의 배반자로 처단할 계획이었다. 모든 것을 감쪽같이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다.

이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다. 그 자체는 들짐승 취급을 받고, 연어처럼 불러들이려 하고, ‘몇 마리 사라져도 모를 멸치’ 같은 존재들이다. 5446 부대의 총교관 김태원은 리수혁 대장에게 당장 불러들여 처형하기보다 각각에게 자결할 것을 명령하자고 제안하고 만약에 살아 있는 자가 있으면 직접 내려가 처결하겠다고 한다. 남파된 부대원들에게 자결 명령이 하달되고, 남한의 공작원들은 하나둘 자살하기 시작한다. 여기 문제의 3인방은 일단 사태를 더 지켜보자고 한다. 그러다 김태원이 직접 이들을 처치하기 위해 남한으로 온다. 남파 공작원들의 몸에는 위치추적장치가 심어져 있다.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집에서 살고 싶다

이 3인방, 목숨 그 까짓 거 아깝지 않게 훈련받았지만 당장 자결하라니 그다지 반갑지 않다. 원류환은 어머니의 안녕만 보장된다면 목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고위 당 간부의 서자였던 리해랑은 이미 자신들의 존재가 하찮게 취급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애초에 사생활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국가의 용도에 따라 훈련되고 경우에 따라 폐기될 존재들이었다. 국가에든 당에든 일방적으로 충성을 강요받았지만 사실 이들에게 그 충성은 구호나 다짐으로써만 존재할 따름이다. 거대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 이론 같지 않은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참으로 애쓴다. 남파된 5446 부대원들은 서형국에게 이론적 실험물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철학과 교수 서형국은 처음부터 5446 같은 부대는 실패할 것이며 조직원들은 배신할 것이라는 이론을 내놓는다. 자신의 이론이 정당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그 또한 남파되어 접선책으로 위장한다. 그는 자신이 이론이 옳다는 점을 어거지로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일종의 덫까지 놓았다. 서형국은 나름대로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던 그들을 ‘더러운 변절자’, ‘남조선의 개’로 몰아갔던 것이다. 솔직히 영화 속 서형국은 가장 끔찍한 인간상이다.

이제 영화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한자리에 모인다. 5446 부대 총교관 김태원은 이제 자신이 훈련시킨 부대원을 직접 제거하기 위한 한판을 벌인다. 거기에 국정원의 서 팀장도 끼어들고, 일대 격돌이 벌어진다. 이 달동네 3인방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김태원 자신이 ‘들짐승들’을 직접 제거하러 남에 내려온다. “내래 너무 동작 크게 하지 말라 그랬디.”

언젠가 서로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원류환은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 한다. 달동네에서 바보 노릇을 하면서 그곳의 사람과 알게 모르게 깊은 정이 들고 말았다. 제 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동네를 떠나갈 때는 정들었던 이웃들에게 애정 어린 멘트를 일일이 날려준다.

비록 초조해하면서 지령을 기다렸지만 그러면서 보내왔던 달동네의 삶이 알고 보면 그가 동경했던 삶이었으리라. 떠나면서 그걸 더욱 절감한 눈빛이다. 자신이 기거하던 가게를 떠날 때 주인아주머니가 건네준 통장에는 이렇게 찍혀 있다. “우리 동구 → 우리 둘째 아들 → 아들 장가 밑천.” 소식도 모르는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냈건만 자신의 곁에 이렇게 또 다른 어머니가 계셨다.

   
▲ 북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썼건만 여기 남녘땅에도 어머니가 계셨네.

이 영화는 남과 북, 북쪽 특수부대 사람들, 거기에 국정원까지 온갖 대치국면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로 대치하는 건 한 개인과 그 개인을 마음껏 조정하고 이리저리 이끄는 거대한 힘일지 모른다. 영화 속 3인방의 평범한 삶에 대한 바람은 그 거대한 힘 앞에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갓 사치였을 뿐이다.

이미 원작 웹툰도 화제작이었던 이 영화의 관객 수가 600만을 넘었다고 한다. 개중에는 영화에 푹 빠져 몇 차례 본 사람도 있을게다. 어쨌거나 그 수백만 명의 관객은 이 영화를 어떻게 전유할까.

북한을 철저히 악으로 묘사하는 몇몇 할리우드 영화처럼 바라봤다가는 길을 잃는다. 온갖 것들을 거두절미하고 거대한 힘에 농락당하는 개인들이 계속 눈에 걸린다. 예전에 군에서 훈련을 받을 때 워게임을 하는데 우리 부대가 전멸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 길 없이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러다 니들 전멸했으니 잠시 쉬란다. 제대 얼마 안 남았을 때는 심각한 집단 얼차려를 받았는데, 얼차려 후에 선임하사가 몇몇을 부른 뒤에 무엇 때문에 군 생활을 하냐고 묻는다. 나는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한다고 했다.

거대한 대의도 좋고 나라도 좋고 민족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소중한 것들이 무시되거나 배제된 그 모든 것들은 말짱 꽝이다. 우리가 아직도 정상국가를 이야기해야 하는 지경이다. 정상국가는 별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분탕질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구성원의 일상적 삶에 해를 가하지 않는 나라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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