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친구되는 생태미술놀이> 출간한 양은희 씨

▲ 양은희, <자연과 친구되는 생태미술놀이>, 북센스, 2013
인터뷰를 요청하기 전까지, 그는 기자에게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었다. 지인들은 그를 “막걸리 좋아하고, 노래와 사람 좋아하는 언니”로 설명했다. 어디선가 “이야기를 참 재밌게 한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잘 알지 못하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들이 다들 그를 좋아하기에, 한번쯤 그가 사람들과 막걸리를 나눌 때 자리 귀퉁이에 앉아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그가 ‘유아생태미술’에 관한 책을 펴냈다는 소식이었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전하던 이는 “유아생태미술의 선구자, 양은희 선생님”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따끈한 책 <자연과 친구되는 생태미술놀이>(북센스, 2013)는 그가 30년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뛰놀며 배운 결과물이었다. 책장을 넘기며 “대단하다,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유아, 생태, 미술. 이 세 단어는 그의 인생에서 어떻게 어우러졌기에 막걸리와 노래, 사람처럼 자연스런 조합을 만들어냈을까.

양은희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사회적기업 미살림 사무실에서 서울역까지 1시간 남짓한 시간을 동행하며, 치열하고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여정을 들었다. 막걸리가 없어 아쉬웠지만, 매일 잡혀있는 생태미술 강의에 책 출간으로 더 바빠진 그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었다.

▲ <자연과 친구되는 생태미술놀이>를 출간한 양은희 미살림 대표 ⓒ한수진 기자

‘육아’ 화두 던진 첫 아이의 탄생

양은희 대표는 대뜸 남편과의 연애 이야기부터 꺼냈다. 1985년 어느 날, 인천 부평 4공단 앞. 대학 졸업 후 후배들과 공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양 대표는 ‘위장취업’을 도와줄 운동권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대로 신문을 들고 공장 담벼락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순간, 양 대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우라가 너무 멋있는 사람이 서 있는 거예요. 어디서 본 듯했는데, 본명도 모른 채 다섯 번 만나 현장지도를 받았어요. 마지막 날에 월급을 탔다면서 ‘이제 만남의 질을 변화시키자’고 하더라고요. 전 이미 그 사람한테 취해 있던 상태라 그 때부터 사귀었죠.”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몇 해 전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잘 어울릴 거라며 양 대표에게 소개시켜줬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각자 사는 게 바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헤어졌지만, 인연은 그렇게 운명이 됐다. 젊은 시절을 노동운동에 투신하고, 현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권오광 씨가 그의 오랜 연인이자 남편이다. 두 사람은 권 씨가 두 번째 징역살이를 마친 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영화 같던 연애와 결혼이 가져다 준 첫 아이의 탄생은 양 대표의 인생에 ‘육아’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양 대표 부부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둘이서 육아를 해결해야 했다. 양 대표가 운동권이 되는 걸 막으려고 정신병원까지 보냈던 친정과 “호적을 파가라”고 할 정도로 완고했던 시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인복이 많아 양 대표가 “형제”라 부르는 친구들이 낮 동안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곤 했다.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면 보육이나 유아교육을 고민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 부부가 ‘평등 부부’로 유명해진 것도 육아 때문이었어요. 서로 일정을 공유하고 누가 아이를 맡기고 찾아올 건지 이야기하는 게 가족회의가 됐고, 자연스레 평등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육아 고민은 양 대표를 보육 현장으로 이끌었다.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집에서 문을 잠그고 있던 아이들이 화재로 죽는 사건이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나면서, 보육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확신했다. 양 대표는 인천에서 공보육운동 단체를 만들고, 탁아입법 제정운동에 뛰어들었다. 인천시의회에 요구해 처음으로 인천 지역 탁아소 총 74곳의 실태조사를 실행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서울 영등포의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을 맡으면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탁아는 부모의 요구에서 출발한 일이었어요. 교사가 되면서는 교사 입장에서 접근했고요. 아이는 대상일 뿐이었죠. 그런데 영등포에서 빈민지역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 무렵 태어난 둘째가 아이 중심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양 대표가 맡았던 어린이집에선 장애통합교육도 시행했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한 공간에서 함께 교육을 받는, 당시엔 새로운 시도였다. 녹지가 없는 영등포의 지리적 특성을 극복하려고 경기도 시흥시에 20평 가량의 텃밭을 분양받기도 했다. 교사, 아이 할 것 없이 흙에서 뒹굴고 꽃과 풀을 만지면서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성장해야 함을 배웠다.

▲ 5월 24일 서울 정동 산다미아노 카페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양은희 대표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무엇이든 표현하면 그게 바로 ‘미술’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양 대표는 새로운 교육 방식에 미술을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뒤늦게 대학에서 아동미술 1년 과정을 수료한 양 대표는 2년간 자신의 집을 실험실 삼아 본격적으로 미술과 아동교육 혹은 놀이를 접목시켰다. 실험 대상은 자신의 자녀와 이웃 아이 8명이었다. 이웃 엄마 한 명은 어린 아이들을 봐주고, 다른 엄마는 아이들이 새로운 미술을 도구 삼아 노는 과정을 기록했다.

“미술은 배우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무엇이든 표현하면 인정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교육은 똑같이 그리기를 강요하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발로 그렸어? 다시는 그리지 마’라고 다그치니 많은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미술 울렁증’을 갖게 돼요.”

양 대표는 도화지 앞에 주저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지 않아도 되는 그림’을 생각해냈다. 자연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오는 ‘자연미술’이다. 꽃을 그리는 대신 말린꽃을 붙이거나 나뭇잎과 흙, 씨앗을 모아 감정을 표현하는 식이다. 또 환경호르몬이 들어있는 물감이나 색종이 사용을 피하기 위해 천연염색을 공부하고 미술 재료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자연이 그대로 작품이 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천연 재료 사용이 중요하다. 양 대표가 협동조합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에서 수년간 활동하며 익힌 생태감수성의 원칙이다.

“먹을거리와 같은 문제예요. 우리가 친환경 농산물을 먹는 이유는 단지 내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살게 하려는 것보다 농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려는 마음 때문이잖아요. 미술도 마찬가지예요.”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를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친환경급식먹이기 운동을 벌이고 텃밭 가꾸기, 나들이와 자연명상 등 다양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양 대표의 생태미술도 체계를 갖추게 됐다. 생태와 미술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는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전에, 교사들이 먼저 좋아했다. 자연과 함께 놀고 작품을 만들면서 즐겁고 마음의 치유를 얻는 과정을 교사들도 그대로 경험하기 때문이었다.

“교사들과 미술을 하면서 ‘힐링’이 이뤄진다는 느낌을 가져요. 작품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거든요. 그게 매개가 돼서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이걸 ‘치료’보다는 ‘치유’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림에 드러나는 걸 문제로 보고 고치려는 접근보다는, 같이 놀다가 행복해지는 과정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양 대표는 “미술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과 예술, 사회를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고민과 갈등이 키워낸, 지난 30년간 쌓아온 작업의 뿌리를 이루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다.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하면서, 한 때 미술을 버릴 생각도 했었어요. ‘내가 그릇을 만들면 뭐하나. 그릇에 담을 밥이 없는 사람도 많은데. 이건 부르주아의 미술이니, 나는 이걸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러나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학생운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판화운동을 전개하고 민중미술 동아리를 조직하면서 “미술은 미대 나온 전문가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의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현명한 깨달음이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누구나 문 밖으로 나가 자연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미술’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헤어지는 인사와 동시에 서둘러 기차에 오르는 그의 바쁜 걸음에서 3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삶의 흔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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