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29]

다랑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 한 달 사이에 1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늘었으니 정말이지 놀랄 만한 속도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두 달도 더 된 아이가 3킬로그램 정도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고 동정의 눈빛을 보낸다. 그러면서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아무래도 엄마 젖이 모자란 것 같다며 분유 먹여서 키우라는 것이다. 분유 먹이면 금세 토실토실 살이 오를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우리 마을 아주머니들은 내가 고기도 잘 안 먹고 이것저것 가리는 음식도 많다는 것을 잘 아시는 터라 엄마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풀만 먹어서 애가 안 큰다며 볼 때마다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신다. 아기가 장이 약해서 먹는 걸 더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얘길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신다.

▲ 둘째 아이 이름은 다랑이다. 다랑이논처럼 제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해서다. ⓒ정청라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밤에 두세 번씩 자다 깨어 젖을 물리는 터라 아침이면 늦잠을 자곤 하는데 아침 7시쯤 되어 누군가 애기를 보러 왔다며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허겁지겁 일어나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이웃이었다. 안면은 있지만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닌데 마을 사람들에게 다랑이 얘기를 전해 듣고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하셨다. 마을 아주머니들께 농담조로 분유 값이 없어서 못 먹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시고 아이 상태를 살핀 뒤에 분유 몇 통이라도 사다주려고 오신 것이다.

걱정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폭력으로 느껴졌다. 감사하며 지내는 내 일상을 왜 이렇게들 쑤시고 뒤흔들어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려 하나 싶어 속상한 마음에 눈물까지 나왔다.

그동안 비리비리한 농사를 지으며 무던히도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부추기는 두려움 앞에서 나는 아주 작아진다. “비료 안 치면 먹을 거 없다, 거름을 팍팍 넣어라, 요즘 세상에 농약 안 치고 어떻게 농사를 짓냐, 유기농이 좋으면 친환경 비료도 있지 않느냐…….”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귀가 닳도록 듣는 말인데, 이제는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목소리를 듣는다. “분유 먹여라, 우유 먹여라, 고기 먹여라……. 그래야 애가 큰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다랑이에게 던지는 시선은 우리 논밭에 던지는 시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평균치의 범위에서 벗어나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겉보기에 좋은 크고 반지르르한 것만 찾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 나와 다랑이가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니 움츠러든 어깨가 절로 펴진다. 살이 팍팍 쪘으면 좋겠다 하고 조바심 나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던 내 눈길도 절로 순해진다. 그동안 씨앗의 생명력과 씨앗을 키우시는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수도 없이 확인해왔던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당장 집 앞 텃밭만 보더라도 작디작은 토마토 씨앗을 심으며 이제 과연 싹이 돋아 열매를 달까 의심했는데 어느새 쑤욱 자라 노란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오늘 밥상 앞에 놓인 밥알은 지난해 남들이 키운 모보다 훨씬 작고 비리비리했던 모가 쑤욱 자라 이삭을 매단 것이 아닌가. 그러니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지금 여기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실상인 것이다. 나는 그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감사하며 아낌없이 제대로 사랑해야 할 뿐!

신랑과 나는 그 믿음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밥을 꼭꼭 씹어 먹는 것이라고 여겨, 날마다 밥을 단물이 나올 때까지 꼭꼭 씹어 먹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제가 꼭꼭 씹어 삼키는 밥이 제게 생명을 주고 피와 살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밥을 먹고 저 또한 밥이 되어 아이에게 피와 살로 가게 하소서.
기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의 밥이 되게 하소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보니 비로소 내가 곧 밥임을 알겠다. 기꺼이 밥이 되는 기쁨도 알겠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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