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아주 어린 시절,
저녁을 먹고 어두워질 무렵이면
동네에 하나 뿐인, TV가 있는 집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밤늦게 돌아갔는데
저녁마다 안방을 내주어야 했던 집주인은
얼마나 지겨웠을까?

자식들이 저녁마다 쪼르르 남의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기 싫다고
결국 우리 집도 얼마 안 있어 TV를 들여놨는데
그 문명의 이기에 중독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최대의 형벌은 아버지가 TV를 잠그는 것이라
(그 시절 TV에는 잠금장치가 있었다.)
늘 아버지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눈치껏 굴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 넋 놓고 보던 프로 중에 내가 접한 최초의 ‘미드’로
<왈가닥 루시>라는 시트콤이 있었는데
어리바리한 루시가 늘상 사고를 치는 장면에서
얼마나 박장대소를 했는지 모른다.
귀여운 루시…….

그런데 어린 마음에 늘 기이하게 보이던 것이 있었다.
산처럼 쌓인 물건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깨지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이었는데
70년대, 물자가 부족해 늘 물건을 아끼는 버릇이 몸에 밴 시대여서일까?
그렇게 물건들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 풍족함이 부러우면서도 왠지 죄를 받을 것 같은 느낌.
그 후로 계속 접하게 된 미국 문명은
한마디로 물질의 천국, 혹은 물질의 천대로 보였는데
인간조차 천시되는 듯 보이는 건 왜일까?

햄버거와 프라이드치킨, 혹은 할리우드 영화와 전쟁 무기로 상징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명이 온 세계를 점령군처럼 뒤덮은 지금,
물질을 남용한 과보(果報)로 쓰레기에게 역공 당하는
미국식 문명 아래의 세계는 행복한가?

엊그제, 여름 구두를 쇼핑하러 갔다.
이미 서너 켤레가 있지만 막상 신자니 다 마땅치 않아서다.
화려한 자태로 진열된 구두들은 이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군침이 흐른다.

너무 예쁜 구두들,
선택이 쉽지 않다.
다 사고 싶다.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번으로 윤병우 님의 ‘그림 에세이’ 연재를 마칩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로 따뜻하고 소소한 일상을 전해주신 윤병우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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