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떠돌이별’ 임의진

그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든다.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린다. 전라남도 강진의 작은 시골 교회에서 10년 가까이 목회를 하기도 했다. 가수, 작곡가, 화가, 목사, 시인……. 그를 규정하기 위해 임의진이라는 그의 이름 앞에 어떤 호칭을 붙이면 좋을까.

홍대 앞 작은 갤러리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만난 그는 “무엇으로 불려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목사니까 교회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고 시골 동네 분들은 임 씨라고 불러요. 무대에선 가수고, 요즘엔 메이홀 관장*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많고, 누군가에겐 선배고 누군가에겐 후배고, 꼬맹이들한텐 아저씨고……. 뭐, 그렇죠. 전부 저를 이루는 한 부분이에요.”

(* 그는 전라남도 광주에 ‘오월정신’을 살리고자 올해 개관한 종합예술공간 메이홀의 관장이다.)

▲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떠돌이별’ 임의진 ⓒ문양효숙 기자

가까운 이들은 그를 ‘떠돌이별’이라고 부른다. 그는 스스로도 “버리는 것도, 떠나는 것도 참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 생활을 훌쩍 버리고 강진 남녘 교회를 향하는가 하면, 2005년에는 10년 동안의 목회 생활을 툴툴 털고 담양에 ‘회선재(回仙齋)’라 부르는 혼자만의 집을 지어 조용히 들어앉았다.

여행도 자주 떠난다. 그는 1년에 한두 달은 외국에서 생활한다. 돌아오는 7월에도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으로 세 번째 남미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이 ‘배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인간 존재 자체가 죽을 때까지 배회하고 방황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모은 여러 나라의 음악과 자신의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해 <여행자의 노래>라는 편집음반을 내기도 한다. 현재 6장 발매된 이 앨범은 월드뮤직 장르의 스테디셀러다. 월드 포크 락 장르의 노래들을 기반으로 하는 이 노래들이 철저히 “내 취향의 노래, 여행의 느낌이 살아있는 노래”라고 설명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영혼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노래를 만든 것 역시 “버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처음 만들기 시작한 건 좋아서라기보다 “인연이 닿아서”였고, 이후로는 차오르는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는 음반을 녹음할 때 한 번에 끝내기로 유명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영혼을 담고 싶어서요”라고 답한다.

“노래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면 기계로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구조적으로 촘촘하게, 뭔가를 덧입힌 음악보다는 자연 그대로가 좋아요. 제 음악의 완결성은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 저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음반이 내 삶의 과정이니까. 1집보다 새로 낸 음반이 좋다고 하면 저도 좋죠.”

더 좋은 결과물을 사람들 앞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앞서면, 덜어내기보다는 더하게 되고, 덧칠이 계속되면 원래의 색깔을 잃게 된다. 과정에 있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스스로가 자신을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이 없으신가 봐요.”
“네. 평상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종교인이기에 갖는 기본적인 것도 있지만, 자연 속에 살고, 길 위에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살다보니 많은 것에서 더 평화롭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어요.”

ⓒ문양효숙 기자

내 노래와 그림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성의 비유

그의 노래와 그림, 그리고 글은 모두 ‘익명의 그대에게 들려주는 신성의 비유’다.

“신의 움직임이 제도 안에 갇힐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게 예수의 스트레스이기도 했고요.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자기의 대상을 갖잖아요. 저는 그렇게 대상을 두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지내요. 신성이, 또 그에 대한 진실성이 더 잘 전달된다면 좋겠는데, 뭐,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하하.”

하지만 그는 강의 본류가 아니라 지류로, 아니면 그보다 더 세밀한 흐름으로 어디선가 다른 물줄기가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진 듯 했다. 무작위적인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도, 사랑보다는 소유와 질투가 넘치는 도시의 삶도 그에게 불편한 것들 중 하나다. 그는 “이런 것들로부터 숨고 싶다”고 했다.

사람에겐 누구나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마음과 함께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공존한다. 그는 특별히 예술가로서 이 욕구가 만날 수 있는 지점에서 노래를 부르고 전시회를 연다. 공연이나 전시회를 열 때 공공연하게 알리기보다는 주변 지인들에게만 알리고, 글을 쓰긴 하지만 TV에 나가길 꺼린다든지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렇게 부름 받았고 이끌림 받았으니 사람들에게 노출돼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는 게 대중이 아니라, 내 진실성을 알아주는,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가는 과정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제 노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한 일종의 러브레터죠. 노래를 할 때도 관객이 아니라 한 사람을 향해 불러요. 음반을 내면 그 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요. 누군가 내 글을 ‘동지의 글’이라고 해 준다면 더없는 영광이죠.”

외롭고도 따뜻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 임의진

문득 ‘임의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가 궁금했다.

“아! 싫어하는 거 무지 많은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게 많은 까칠한 사람이 매력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밋밋하고 재미없고, 음, 정치적이에요.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요? 예수님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싫어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사람이 극명한 편이 좋아요.”
“싫어하는 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 다 싫어해요. 사람이 기준이죠.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땐 같이 싫어해요. 그런데 혼자 있을 땐 싫지 않아요.”

기타 하나에, 때론 피아노 소리 하나에 기대어 부르는 그의 노래는 외롭고도 따뜻하다. 그는 2012년 발매한 4집 <멜랑꼴리맨>에 담긴 ‘기타 맨’, ‘수십억광년의 고독’, ‘길 잃은 자의 노래’ 등의 곡에서 순례자인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읊조리고, 몇몇 다른 노래에서는 세상을 향한 솜털 같은 연민을 드러낸다. 같은 앨범의 ‘구럼비 강정’에서는 “노래하면 우리가 이겨요. 말똥게와 돌고래가 이겨요”라며 강정마을을 위로하고, 2008년 발표한 노래 ‘여리디 여린’에서는 축구공을 만들고 옷을 만드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현실을 가슴 아프게 노래한다.

ⓒ문양효숙 기자

인간은 결국 방랑하는 존재, 외로움 때문에 떠난다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날 때마다 떠나온 자리가 사무치게 그리워 안절부절하곤 했다. 여러 차례의 여행 끝에 결국 나는 돌아갈 곳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다는 걸 알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고향을 떠올리는 건 ‘정주’에 대한 욕망보다 훨씬 근원적이라고 느꼈다. 어딘가에서 떠나 지구별에 온 인간은 돌아갈 때가 가까워질수록 ‘처음 떠나온 그곳’을 향한 갈망이 깊어지는 거라고 말이다. 떠도는 삶을 원하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때는 없는지 물었다.

“자주 그렇죠. 세상이 내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울하거든요. 소통 불가라고나 할까. 뭘 먹을까, 뭘 입을까가 관심사인 주변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내 안에 들어온 세상, 그러니까 나무와 바람, 사람에 대한 비밀, 그런 게 너무 달라서 처음엔 공포스럽기까지 했어요. 이런 세상이 아니라 본향이 그립다는 생각, 많이 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자꾸 여행을 떠나는가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 연민을 느끼고, 그래서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간극. 그의 시와 노래에 묻어나는 외로움도 여기에 기인하리라. ‘수십억광년의 고독’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유일한 출구는 진실한 사랑 / 지상의 배회를 마치면 돌아가리라 / 수십억 광년의 고독을 끝내고 / 떠나온 별에서 영원히 사랑하리라.”

그는, 떠돌이별 임의진이다.


▲ ‘수십억광년의 고독’ <작사 작곡 · 노래 : 임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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