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 - 10]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최서연 교무

▲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의 최서연 교무 ⓒ문양효숙 기자

최서연 교무를 만나기 위해 서울 화곡동에 있는 서울외국인센터를 찾았을 때, 최 교무는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 오후 2시였지만 반지하인 외국인센터는 책을 읽을 만큼 햇빛이 넉넉하지 않은 듯 했다. “어둡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이면지로 만든 명함을 내밀며 “전혀요”라고 답한다.

“대부분 도시에서는 대낮에도 문을 닫은 채 불을 켜고 생활해요. 여름인데 겨울처럼 살려고 하고요. 그런 생활 습관으로는 어려워요. 작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필요로 하는 전기를 다 쓸 수 있어요.”

외국인센터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2005년에 만든 3㎾급의 이 햇빛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발전차액제도가 있을 당시 한국전력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전량 판매한다. 매해 22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 했다. 하지만 최 교무는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석유 에너지는 고갈돼 가고, 원자력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고.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어요. 각자 지역마다 에너지 자립을 하면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잖아요. 많은 분들이 태양광발전이 투자 대비 회수가 더디다는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필요한 일’이라고 말해요. 경제적 논리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필요하지도 않은 4대강 사업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했잖아요. 떼돈이 생긴다니까 가만히 있었던 분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건 가치가 없는 일이에요.”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의 세례명을 딴 요안시민발전소
“조금만 불편하면 에너지 문제를 도시에서 해결할 수 있어요”

3층짜리 주택에 설치된 이 시민발전소의 이름은 ‘요안’이다. 공사비 2400만 원을 지원해 주신 부모님의 세례명에서 따왔다. 아버지의 세례명은 요아킴, 어머니의 세례명은 안나다.

최 교무 가족은 모두 가톨릭 신자다. 심지어 동생은 수녀. 종교는 다르지만 가족은 평화롭다. 최 교무는 “서로 자기 종교를 주장하면 갈등이 있겠지만 그런 게 없다”며 오히려 “종교가 달라서 배우는 게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가족이 같은 종교를 갖는 게 좋다’고 하실 때, ‘어머니, 그 생각은 틀렸어요. 사람마다 종교는 다를 수 있어요’ 하면 어머니 생각에 내가 반대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아, 어머니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다르니까요. 원불교에서는 다른 가르침도 다 받들어요. 그러니 내가 원불교 교무인 게 어머님 신앙과 대치되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씀드리지요.”

최서연 교무는 2000년 출가식을 했다. 대학 시절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포항공대 박사과정까지 밟은 촉망받는 공학도였던 딸이 원불교 교무가 된다 했을 때, 부모님은 그 결정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 교무는 “그 길에서는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르던 것을 알고, 새롭게 알게 된 것으로 세상을 좀 살기 좋게 만들 수 있겠구나 했죠. 그런데 이 지식으로는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기는 어렵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근본적으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아무리 획기적인 지식이라 해도 자기 이익을 위해 쓰면 세상에 도움이 안 되니까요. 저는 행복할 것 같지 않았어요.”

최 교무는 대학 시절 불교를 만났다. 불교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원불교에 대해 물었다.

“원불교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잘 몰라요’ 하고 대답하면 끝나는 건데, 제가 거기서 아는 척을 했던 거죠. 대답을 제대로 했나 궁금해서 원불교 경전을 찾아봤어요. 대답을 틀리게 했더라고요, 하하. 그때 원불교 경전을 한참 읽었어요. 부처님 말씀도 그대로 있고, 시대에 맞는 가르침도 있었죠. 제 나름의 의문에 답을 주었어요.”

▲ 최서연 교무가 센터 지붕에서 햇빛발전소와 새로 설치한 난방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내가 세상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깨달음, 원불교 교무의 길로 이끌어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것은 원불교의 ‘은혜’ 사상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과 같이 원불교에서는 은혜가 중요한 가르침이다. 원불교의 사은사상(四恩思想)이란 천지 · 부모 · 동포 · 법률, 네 가지 은혜를 말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근본적으로 은혜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에 대한 최 교무의 깨달음은 세상의 중심이었던 내가 우주의 한 부분이 되는 아주 큰 전환점이었다.

“공부를 잘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깨달았던 거예요. 아, 부모님께서 큰 은혜를 주셨구나, 깨달았어요. 나아가 천지, 동포들, 참 많은 은혜 속에 살았는데 나 잘났다는 생각에 빠져서 내가 배은을 하고 살았구나 하고요. 앞으로의 인생은 보은을 하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죠.”

출가식을 한 후 교단으로부터 처음 받은 사령은 스리랑카 선교였다. 6개월간 준비하면서 스리랑카 사람 5천여 명이 한국에 노동자로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10만 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의 존재도 알게 됐다. 당시 원불교에는 외국인노동자센터가 하나도 없었다. 마침 스리랑카 내전이 심해져 출국이 보류되면서 최 교무는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서울외국인센터는 태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서 온 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과 컴퓨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 최서연 교무가 센터 정원 한 귀퉁이에 자라나고 있는 호박을 만지고 있다. “씨앗만 뿌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쑥쑥 자라는 걸까요”라며. ⓒ문양효숙 기자

센터 정원에서의 작은 농사, “도시가 바꿔나갈 수 있다”

이 센터 한 귀퉁이의 작은 정원에서 최 교무는 상추, 고추, 오이, 호박 등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한다. 여름이면 기본 채소는 모두 이 정원에서 자란 것으로 해결한다. 환경 문제에 관한 그의 관심은 도시 농업으로 이어졌다.

“우리 정부는 농업을 폐기처분한 것처럼 다루고 있어요.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숫자로는 정부의 농업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아요. 도시에는 사람도 많고 힘도 있죠. 도시에서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대안은 도시농업이죠.”

최 교무는 씨앗만 뿌리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햇빛과 바람으로 작물들이 자라는 걸 보며 “재배과정이 주는 영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란 작물들은 이웃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천지의 은혜를 안다면 당연한 것”이다.

“원불교 경전인 대종경 인과품에 ‘우주의 진리는 끊임없이 돌고 돌기 때문에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이고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변함없는 도니까 잘 알고 살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내가 주면 받게 되어 있고, 받은 사람은 주게 되어 있어요. 주지 않고 꼭 쥐고 있으면 가져가기도 해요. 우주의 이치예요.”

서연. 원불교에 입교하면서 받은 그의 법명이다. 맹세할 서(誓)에 못 연(淵)자를 쓴다. 마르지 않는 연못과 같은 서원을 품고 살라는 뜻이다. 이름은, 지어준 이가 그렇게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반복해 다른 이들에게 불리우며 서서히 그런 사람이 되어가기도 한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하늘과 땅, 그리고 그와 연결된 온 생명의 은혜에 보은하며 살아가는 최 교무는 “교무로 살아서 참 좋다”고 말한다.

“뭔가를 소유하지 않아서 좋아요. 뭔가를 가지려 하고 더 쌓아 두려 하고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 것에서 자유롭죠. 이 삶이 아니었다면 갖지 못했을 자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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