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믿음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에서는 유신헌법을 홍보하는 리플렛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유신헌법만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등의 구호가 담긴 표어를 나눠주고 대문에 붙이라고 ‘지시’하였다. 병영국가였던 당시 우리 사회에서 교육공무원이 정권의 대민홍보 및 순화교육의 하사관이었다면, 우린 대한민국의 어리고 착한 학도병(學徒兵)이었던 셈이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국운을 건 사명에 제대로 복무하는 게 우리의 의무였을 텐데, 당시 신동우 화백은 그 리플릿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풀어주는 유능한 정훈장교였던 셈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여기에 설복당해서 애국심에 부풀어 옆집 형과 가두홍보에 나섰다. 우린 리플릿에 나오는 그림을 베껴서 포스터를 만들고 학교에서 나눠준 표어를 여러장 옮겨 적었다. 그리곤 숫기가 부족했던 우린 그 겨울 밤마다 길가에 그 표어와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며 독립운동하는 기분을 맛보았다.
집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학생운동의 세례를 받았고, 유신체제가 가르쳐준 집단의식으로 이른바 부패 권력에 저항하였던 것 같다. 이 집단의식은 사뭇 공동체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개념이 바뀌어 나갔지만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학생운동 역시 개인이 비집고 앉을 자리는 없었다. 개인주의는 소시민적 작태로 여겨졌고, 우린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라는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아직도 불의한 권력이든 선한 권력이든 일체의 ‘힘’에 대한 거부감을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그 동안 반복적 기억주입방식으로 세뇌 당해 온 ‘집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반동(反動)인지도 모른다.
집단이 있으면 리더가 있기 마련이어서 권력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집단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지배권력이며, 또한 이에 저항하는 세력 역시 상황을 한꺼번에 역전시킬 힘을 얻기 위해 추종자들에게 집단주의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의식을 조작하기 위한 장치는 고도로 세련되고 치밀하게 마련된다. 전문가들은 많은 보수를 받고 집단심리, 군중심리학을 탐구하고,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을 생산한다. 그 결과 어느 집단에 대한 충성을 맹세케 하는 감정은 이념의 차원을 넘어서 태생적인 기억의 하나로 잠복되어 있다가 은연중에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조종하기 마련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기억 조작의 대표적인 경우를 텔레비전 광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어느 글에서 보니, 유연한 기업 이미지 광고가 나가는 중간 중간에, 육안으로 확인되지는 않을 만큼 아주 짧은 순간에 상품에 대한 컷을 삽입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품에 대한 컷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의식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그 상품을 보면 이미지 연상 작용에 의해 그 상품을 왠지 친숙한 것으로 느끼고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전략에서 헤어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같은 방식이 크고 작은 권력의 유지 확장에 활용된다면 우리 자신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작된 삶을 제것인양 착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선 인간의 ‘자유’를 논할 여지가 없어진다.
다시 호출해서 담백하게 응시해야 할 기억
기억이란 자신이 경험한 사실, 또는 이미 원초적으로 내재된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호출하는 것이다. 그 기억 가운데는 호출 당하기를 꺼리는 코드도 있고, 언제든지 응답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코드도 있을 것이다. 아프고 쓰린 기억, 그래서 나의 존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간신히 견디며 살고 있는 삶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만한 기억이 있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안온한 기억 역시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가 조작당해 이식된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이라도 호출하여 담백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픈 기억은 드러내어 치유하고, 안온한 기억에는 담담한 시선을 부여하여야 한다. 무엇을 기억해 낸다는 것은 결국 그 기억이 햇볕에 바스러지지 않을 만큼 적절히 말려서 오늘과 내일을 사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은총으로 작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차분히 점검하려고 할 때는 이미 그 기억이 조장한 상처가 이미 도질 대로 도진 때가 많다.
상처받은 기억을 넘어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1988년 12월에 가석방으로 출소하여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이승을 떠난 시인이자 혁명가이자 농부의 마음을 가졌던 김남주. 그 사람이 남긴 시어들은 그 사람의 행적만큼이나 우리에겐 상처이면서 은총이다. 상처를 은총으로 뒤바꾸는 힘을 그에게서 느낀다. 아마도 바닥을 본 사람은 이미 하늘을 본 까닭에 하늘이 그를 서둘러 호출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런 시를 썼다. ‘고목’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나무는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속에 숨겨두지 않고 온 몸으로 자신의 기억을 세상에 확인시킨다. 이력만큼 많은 상처들 속에서 오히려 키가 크는 나무, 그 나무가 받은 상처가 오히려 숨막히는 세상에 숨통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내 상처 부위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세상엔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 상처들마저 내 것인 양 아파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영혼이 누리는 거룩한 자유다.
모든 기억은 기억 그대로 진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억은 정화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기억 가운데 자본과 권력에 의해, 결정적으로는 내 안에 도둑처럼 도사리고 있을 힘에 대한 숭배와 탐욕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고 일그러진 부위를 세척하여야 한다. 이 정화작용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의 기억은 어떤 고달픈 기억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 생애를 버티게 해주는 모든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음울한 기억마저도 햇볕 속에선 선명한 얼룩에서나마 이다음에 내딛을 길의 좌표를 읽게 해주는 호출부호가 되는 까닭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다시 아름답게
언젠가 누가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한강이란 소설가가 쓴 작품 가운데 나오는 구절이라는데, 지금도 책상머리맡에 붙여두고 이따금 되풀이하여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읊조려 보곤 한다.
You are like a flower that grows in the shade;
the gentle breeze comes and bears your seed into the sunlight,
where you will live again in beauty.
너는 음지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네 씨앗을 햇빛 속으로 나를 것이니, 너는 그 햇빛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살게 될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은 역시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예전엔 보다 선명한 적을 향해 피투성이로 싸웠다면, 지금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의 적은 더욱 완강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당혹스럽다. 그러나 안팎이 다르지 않아서, 내면의 상처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안에 얻은 것일 수 있다. 삶의 진정성을 얻고자 하는 자의 삶은 고단하다. 가시적인 획득물로 안심할 수 없으며, 더 높은 차원의 영혼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투성이로 음지에서 살아 온 세월 때문에 햇빛에 노출될 때, 그 흡인력은 대단할 것이며, 광합성 작용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왕성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늘의 몫이니 내 걱정이 아닌 셈이다. 우리는 해야할 일을 할뿐이다. 나머지는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감당해 온 모든 기억은 나와 세상을 들어올리기 위한 안간힘의 기록이며, 단련과 정화의 과정이며, 이젠 그 기억마저 빛 속에서 축복받을만한 것이 됨을 믿고 싶다.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사실 그 안에서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전에 어느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꺼내 읽고 고쳐 쓰면서 나를 다시 햇빛 속으로 옮겨다 줄 사람들을 새기려고 마음바닥을 뒤집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