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옛 성인들이 경고한 7가지 죄악에도 속하는 게으름은
자체가 악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게으른 자의 영혼 또한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데
일종의 징벌이기도 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게으름에 빠지는 것일까?
넝쿨 장미가 한창인, 빛나는 이 계절에
만일 게으름에 빠졌다면 삶에 대한 일종의 직무유기는 아닐는지.

게으름이란 행위의 유예, 행동의 굼뜸,
이런 것이 연상되지만
비록 행동이 굼뜨더라도
목표가 있고 방향을 잃지 않은 채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결코 게으르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삶에서 희망을 잃었을 때,
자발성과 창의성이 질식된 상태에서,
삶과의 관계에서 목표를 찾을 수 없을 때,
누구라도 게으름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전에 읽었던 추리소설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참혹한 고통을 겪은 여자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복수하는 이야기인데,
인상적인 것은 엄마가 어린 딸의 고통을 알면서도
상황을 타개하기는커녕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부지런히 집안을 청소하는 데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집안,
엄마는 하루 종일 쓸고 닦기만 한다.
딸이 그토록 고통을 겪는데 하루 종일 청소라니…….
그런데 거기서 느닷없이 게으름이 연상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쓸고 닦는데 왜 게으름이 연상되는 것일까?

속도가 슬로건이 된 세상,
모두 앞다투어 미친 듯이 달려 나가지만,
바쁘다 바빠 외치며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살지만
게으름이 일종의 시대적 징후로 보이는 건 왜일까?
왜 소설 속의 청소만 하는 엄마가 이 시대와 오버랩되는 것일까?

휴일 동안 어지럽힌 집안을 청소한다.
이건 그냥 더러워서 하는 청소일까?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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