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변에 작업실을 하나 얻어 드나든 지 1년 남짓 되었다. 자동차로는 평일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2시간 가까이 잡고 다녀야 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용산역에 가서 전철에 올라 꼬박 1시간을 실려가다보면 일쑤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도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는 양수리 못 미쳐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강변도로를 20분쯤 달리다 보면 도심에서 움츠러들고 뭉쳐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고 답답하던 시야도 활짝 트여서 기분이 여간 상쾌해지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회의적 충고들을 떨치고 이렇게 멀찌감치에다 글방을 마련한 나의 결단이 새삼 대견스러워지는 것이다. 강 가까이는 습도가 높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는 따위 상식적인 지적들 외에도 물가에 너무 오래 머물면 기가 빠진다, 생각이 맺히지 않고 흘러버린다는 등등의 출처불명 이론들이 내 의지를 흔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끝내 이 강가 집―사실은 방―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강이란 것이 내 삶의 이 시점에서 다가온 어떤 회귀의 인연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려서 나는 낙동강 가에서 자라났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라는 동요 가사가 일 년 대부분의 일상이었던 강마을 아이였기에 강은 내게 고향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우리집은 특히 강 건너 마을로 나룻배가 다니는 선창가 근처에 있어 그곳에서 인근 우시장 사람들을 상대로 국밥과 막걸리를 팔던 두어 개 주막 풍경도 내 마음 속 고향 사진첩에 포함돼 있다. 젓가락 장단에 맞춰 “당신과 나아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따아면~” 하고 새된 목청으로 술꾼들의 흥을 돋우던 주막 아낙들의 모습도 그 사진 속에 들어 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봄, 가을로 학교에서 소풍을 가도 강 건너 밤숲으로 갔고, 여름에는 강에서 멱을 감거나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겨울에도 얼어붙은 강에서 종일 썰매를 지치거나 연날리기를 하거나 얼음낚시 하는 동네 아저씨들 곁을 맴돌며 놀았다. 이렇게 자고 새면 강과 함께 생활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강이 있는 풍경 속에 자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종의 귀향본능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중년 이후에 부모님이 살다 가신 한강변 아파트로 이사 와 살고 있지만 고층건물 숲에 둘러싸여 집에서 강이 내다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온통 콘크리트로 포장된 강 주위 길이나 둔치 공원이 내 마음 속 강 풍경이나 환경을 닮은 바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그 읍을 찾아가도 이제 그곳의 강은 더이상 ‘그 강’이 아닌 것으로 변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을 원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가 한 지인의 소개로 이 글방을 얻고 나니 그 모호한 갈망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다.

ⓒ박홍기

얼마 전 어느 날, 반나절을 꼼짝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던 뒤라 어질어질한 심신을 추슬러 생수병을 꿰차고 강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삼십 리 가까이 걷다 돌아온 적이 있다. 남양주시에서 조성한 북한강변 자전거 길을 목표도 없이 무작정 걷다 보니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모자도 없이 하염없이 걷다가 나무 그늘이라도 나타나면 잠시 앉아서 바라보는 강물은 방에서 내다보는 강물과는 또 달랐다. 뭐랄까……. 그 무심한 강과 더불어 나도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무슨 ‘한 소식’ 얻는 양 내 몸에 전율처럼 번지면서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둠이 시나브로 내리기 시작하자 더이상 흐르지 않고 있는 자신이 느껴졌다.

마침 작업 중이던 번역서가 유대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에 대한 책인데 거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우리 삶을 혼란케 하는 무엇이다. 그것은 사실 숨겨진 질서가 있는데도 카오스의 환영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오감은 시간의 환영을 꿰뚫고 그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한다.” 햇빛 속을 걸을 때는 의식하지 못하던 시간이 어둠이 내리자 갑자기 의식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흐르기를 멈추었다. 강은 계속 흐르고 있을 테고 나도 계속 걷고 있었지만 시간(의식)의 방해로 더이상 강과 함께 흐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어둑한 강 둔치의 과수밭을 가로질러 차들이 다니는 큰길로 서둘러 올라왔다. 그날 강과의 교감(交感) ‘데이트’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너무 걸어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라 버스를 기다려 타고 작업실로 돌아가면서 나는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속에서 붙박이고 마는 존재의 비애를 느꼈다.

참 가여운 일이었다. 흐르고 흘러야만 내 존재의 본향을 찾아갈 수 있을 텐데……. 강물이 흘러 흘러 다시 빗물로 이슬로 눈으로 바람으로 제 원천에 돌아가듯이 말이다. 어쨌거나 모처럼 얻어 걸린 이 강가 글방에서 나는 틈나는 대로 강물 따라 흐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내가 용산행 전철을 타는 운길산역에는 주말에 등산객들로 몹시 붐빈다. 그들은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차려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가 내려와선 인근 맛집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하산주 한 잔에 불콰해진 얼굴로 ‘사는 맛’을 떠들썩하게 주고받으며 전철을 기다리는데, 이들을 보며 나는 더불어 유쾌해지면서 현재에 붙박인 실존의 맛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붙박인 삶의 소박한 즐거움을 기뻐할 줄 아는 이는 필시 덕 있고 선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에 붙잡히지 않고 강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기쁨을 추구하는 이라면 필시 지혜로운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했던가. 요산요수를 통해 붙박여서도 흐르는 삶을 터득한다면 어느 군자인들 부럽겠냐만, 아무래도 나는 요수 쪽에 마음이 더 쏠리는 것 같다.
 

 
 

구자명 (임마꿀라타)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소설 쓰기가 주업이고 이따금 부업으로 번역도 한다. 최근에는 동료 문인들과 함께 ‘문학적으로 자기 삶 돌아보기’를 위한 미니 자서전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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