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3]

슬아,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볼게.

‘남자만 의무적으로 군대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초등학교 때부터 남녀 간 논쟁이 되는 주제잖아. 실제로 2006년에 한 아저씨가 남성만의 병역의무 부과를 규정한 구 병역법 조항들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단다.

헌법재판소는 뭐라고 했을까? 헌법재판소는 기각, 각하 결정(헌법재판소 2010.11.25. 2006헌마328)을 했어. 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서 본안 판단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각하’이고, 본안 판단은 하지만 위헌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서 합헌판단을 내리는 경우에 ‘기각’ 결정을 해. 간단히 말하면, 남자만 군대 가라는 법은 ‘합헌’ 결정난 거야.

슬아, 넌 어떻게 생각해? 보통 이런 얘기 나오면 여자가 애 낳으니까 남자는 군대 가야 된다거나,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 어쩔 수 없다거나,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니?

헌법재판소 재판관 할아버지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본안 판단에서, 두 분께서는 위헌 의견을 제시하셨고, 한 분께서는 각하 의견을 제시하셨단다. 각하 의견 내신 분의 의견이 특이한데, 쉽게 말하면 여성도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도록 병역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군대를 가야 할 남성이 군대 안 가게 되는 건 아니니까 헌법소원 청구한 아저씨에게는 헌법소원 요건 중 하나인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의견이었어. 그러니까 판단할 가치조차 없다는 의견을 내신 거야.

하지만 다수 의견은 이 사건에서, 병역의무 부과의 영역은 입법재량이 넓게 인정되는 영역인데 남녀는 신체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입법 재량을 현저히 일탈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위헌은 아니라고 논리를 구성했고, 그래서 ‘기각’이라고 결정했단다.

말을 빙빙 돌리는 것 같지 않니? 쉽게 말하면, 병역의무는 헌법 제39조 제1항에 쓰여 있는 헌법상의 의무인데 이 의무는 입법자(국회)가 법률을 형성하는 데 따라 구체적으로 결정이 되는 거고, 결국 입법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이게 완전히 헌법 원칙들에 반하지만 않으면 대충 뭐 합헌으로 봐주겠다, 이런 거란다.

그런데 아까 본 것처럼 헌법에는 남녀 평등해야 된다고도 쓰여 있잖아? 그거 위배한 거 아냐? 그랬더니, 남녀는 신체가 다르니까 남자만 군대 간다고 입법자가 결정한 게 위헌은 아닌 거야, 라고 대답한 거고. 물론 이 판결의 논리대로 가면, 신체검사를 해서 현역 복무를 못 하는 것으로 판정된 사람들에게 군복무의무를 면제하는 것도 당연히 위헌이 아니게 되는 거란다.

슬아,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혹시 너, 판결문 안에 들어 있는 논리가 더 ‘남녀 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 남녀의 신체 구조가 다르니까 의무병의 경우에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러니까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고 여성들은 국방과 같은 ‘남성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 네가 전적으로 동의할 필요는 없단다. 오빠가 이 판결을 언급하면서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무엇보다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고민’이란다. 헌법의 평등원칙은 이러한 대원칙에 입각해 있거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 말이야. 이는 곧, 같은 것을 다르게, 또는 다른 것을 같게 대우한다면, 그것이 바로 헌법에 반한다는 고민이야.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이 원칙을 얼마나 충실하게 지켰는지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슬아, 그 원칙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필요한 것 아닐까?

슬아, 오빠는 이런 생각이 종종 들어. 혹시 우리 사회와, 오빠의 삶, 그리고 너의 삶은, 다른 종류의 것들을 같게 대우하는 데 너무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현실 속에서 같은 처우를 받는 많은 경우들이, 실은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합당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학교에서 보는 시험만 하더라도, 타고나는 지능도 모두 다르고 개성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국가가 정한 과목들을 일률적으로 가르치고 점수를 매기고 등수로 평가하는 것이 그 자체로 ‘위헌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왜 일률적으로 점수를 통해서 ‘같게’ 평가받아야만 하는 거지?

우리 이제 고민을 시작해 보자. 즐겁게.
우리도 ‘헌법상 기본권’을 갖고 있는 ‘권리자’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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