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주의 교회에서 영성 구출하기

김사인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데 귀지 파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제목도 ‘간질간질한 이야기’였다. 잠시잠깐 상상해 봐도 벌써 귀가 간질거린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틀림없이 그런 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식구들이나 이웃의 귀지 파는 걸 아주 재미있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한테 붙들리면 즉시 모로 눕혀집니다. 그리고 귓속 청소를 해주며 즐거워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 무릎 베고 누워서 귀를 맡기던 기억들 나실 겁니다. 귀를 맡기면 혹시라도 아플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그 간질간질함이 얼마나 시원했던지요. 어머니 치맛자락에 묻어나는 부엌 냄새 군불 냄새를 맡으면서 졸음이 올만큼 아늑하고 편안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이고, 이거 좀 봐라. 이런 게 귓속에 들어앉았으니 엄마 말 듣겠니?” 이러시면서 쥐똥만한 귀지를 파내어 손바닥에 탁 올려놓으면,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신기하고, 우습게도 속으론 좀 대견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아내 신세를 집니다마는, 여러분들께서는 어느 분 무릎에 귓속을 맡기시는지요.”

안심하고 맡길 무릎이 있다는 게 행복이다. 그 무릎 없으면 불행이다. 사람이란 간혹 누군가에게 치대기도 하고 자기를 내맡기고 쉬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늘 같은 사람, 둥지 같은 무릎이 필요하다. 제 귓구멍 맡기고 사는 이야기 수군수군 소곤소곤 나눌 때라야 사는 행복에 겨드랑이가 간질거린다. 세상 일이 정치가 어찌 돌아가던지 사람의 삶은 달라지는 바 없다. 오늘 하루는 다시 못 올 하루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하고, 마흔줄에 들어서면 오늘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한 때이기에 그토록 간절하다. 오늘 빛나지 않으면 오늘 다복하지 않으면 오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일은 더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이 내일이고, 오늘이 내 생애다.

그러니 부질없는 욕망에 몸을 맡기지 말자고 다짐을 둔다. 그리고 다만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에게 먼저 시선을 주어야 한다는 엄중한 주의를 나 자신에게 주곤 한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귀한 생명이다. 모두가 하늘아래 점지를 받아 손님으로 세상에 초대받은 당신이다. 이승길 더불어 걸어가면서 슬픔도 나누어지고, 도타운 사랑도 나누어가진 사람들이다. 눈물겨운 밥을 덜어먹고, 온기로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니,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가야 한다. 그게 사랑이고, 그래야 사람이다. 김사인은 <밤에 쓰는 편지>라는 시집에서 ‘딸년을 안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어한다.

한 살 배기 딸년을 꼭 안아보면
술이 번쩍 깬다 그 가벼운 몸이 우주의 무게인 듯
엄숙하고 슬퍼진다
이 목숨 하나 건지자고
하늘이 날 세상에 냈나 싶다
사지육신 주시고 밥도 벌게 하는가 싶다
사람의 애비된 자 어느 누구 안 그러리
그런데 소문에는
단추 하나로 이 목숨들 단숨에 녹게 돼 있다고도 하고
미친 세월 끝없을 거라고도 하고
하여, 한 가지 부탁한다 칼 쥔 자들아
오늘 하루 일찍 돌아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너희 새끼들
그 바알간 귓밥 한번 들여다보아라
귀 뒤로 어리는 황홀한 실핏줄들
한 번만 들여다보아라
부탁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 싶은 애비의 간절한 맘이다. 힘없는 애비가 힘 있는 자에게 최소한 사람 목숨 해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조금은 비겁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상처가 생기더라도 내 아기는 이 사람들 보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세상은 여지껏 선한 이들의 손에 쥐어진 적이 없었으므로, 세상은 여지껏 탐욕스런 청맹과니들에게 맡겨져 있었으므로, 세상은 앞으로도 수단 좋은 사람들이 다스릴 것이므로 하소연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믿지 못하겠으므로, 그래도 뭔가 말해야 하므로 간청하는 것이다. 너희도 사람이라면...하고 말이다.

민주주의도 사람의 목숨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자유대한도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하루의 밥을 벌기 위해서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걷던 이들은 여전히 내일의 밥을 걱정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우리는 우리들의 나라를 걱정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몫의 일을 하고 있지만, 삶은 우리에게 가혹하고 삶은 우리에겐 윽박지른다. 세상은 돈을 가진 자들이 힘을 얻고 힘을 얻은 자들이 목청을 돋군다. 대명천지 자유민주 세상에서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속으로만 울고 나지막히 말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사랑을 키우고 있지만, 그 사랑이 아름답고 눈물겹지만 참 외로운 사랑이다. 힘겨운 사랑이다.

내일이면 대통령 선거라고 한다. 누가 될까? 사람들은 벌써 대통령은 결정되어 있다는 듯이 말한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판가름이 났다는 것이다. 압도적 다수가 그를 지지한다고도 한다. 예전부터 내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 그 사람이 대통령 되면 이민 간다고 했다. 그럴 리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그 사람이 싫은 것이다. 요즘은 이민 준비되었냐?고 묻는다. 스스로 개천에서 용이 되었다는 사람이다. 그래서 청계천을 복원했는지 모르겠지만, 개천에서 용이 되는 과정에서 엄청 오물을 뒤집어쓰고, 내장까지 오물이 범벅이 되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평생을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살아 왔으니, 상업주의적 습성은 인이 박혀 쉽게 정화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다. 마음이 자꾸 꿉꿉하다.

김사인 시인은 ‘옥동의 한 아이에게’ 건네주는 시를 썼다.

춥지 않느냐
외진 신작로 마른 먼지길
오똑하게 혼자서 가고 있는 아이야
해진 팔꿈치와 옷소매
쩍쩍 갈라진 네 조그만 주먹을 보며
꼬옥 움켜쥔 낡은 책가방을 보며
내 가슴은 사정없이 무너지는데
코 끝에 성가신 콧물을 문지르며
씩 웃는 네 얼굴은 말 못 할 맑음으로 눈부시다

목숨의 소중함과 사랑을 떳떳이 말하지 못하여
이제 내가 할 말은
‘춥지 않느냐’는 물음뿐

추위와 가난을 썩 앞질러 야무지게 걸음을 옮기는
조그만 들에 대고
네가 자라 더 거센 추위가 닥칠지라도
오늘의 이 눈빛 잃지 말고
힘차게 북을 치며 나아가라고
속으로만,
그러나 목이 터져라 나는 외치는데

들리느냐, 아하 우리들의 아이야

“씩 웃는 네 얼굴은 말 못 할 맑음으로 눈부시다” 그래, 오히려 아이에게서 힘을 얻는다. 우리는 지켜보지만 아이들은 걸어나간다. 오똑하니 야무지게 내 앞길을 걷는다. 우리들의 염려를 뒤로 두고 성가실 것 없노라고 뛰어갈 수도 있겠다. 오물일랑 뛰어넘고, 절망일랑 걷어차면서 북을 치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겠다. 우리들의 염려를 무색케 하는 이 아이들이 장하다. 우리들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연필을 잡고 다시 연장을 든다. 오늘 내게 주어진 몫을 일을 마저 하고서, 그래도 남아 있는 정겨운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눌 기력 있으니, 그래, 희망이다. 정갈한 희망은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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