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2]

슬아, 혹시 너희 학교에도 ‘우등생’들에 대한 특별한 혜택이 있니? 뭐, 이런 것 말이야.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따로 모아서 좋은 데서 자율학습을 하게 해 준다거나, 그 교실만 좋은 에어컨을 달아 준다거나, 아니면 걔네들만 따로 나들이를 시켜주거나.

실제로 그런 것이 문제된 적이 있었단다. 어떤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높은 아이들만 따로 모아서 좋은 환경에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해 준거야. 그래서 그 학교의 한 학생의 학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고, 2008년 5월 인권위는 그 진정을 받아들였어(2008년 5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보도 자료 ‘성적 기준 자율학습 전용실 개선 권고’).

결국 인권위는 그것을 바로잡으라고 권고했고, 그 고등학교는 수용했어. 그 학교는 독서실처럼 책상마다 칸막이를 설치한 자율학습 전용실을 만들고, 학년별로 성적이 우수한 30명 내외의 학생들만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 했었거든. 전교 30등까지만 이용할 수 있는 ‘우등생 교실’을 만든 거지. 그래서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학생들을 차별한 것이 문제됐던 거야. 인권위에서는 뭐라고 했을까?

“국가인권위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에 의하여 설치 · 운영되는 공교육은 헌법 제31조 제1항에 따라 모든 학생들에게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는데,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학생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양하고 잠재적인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면학실에 입실하여 정숙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적 결과를 가져왔으며, 입실에서 배제된 학생들에게는 열등감 및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이 조금 어렵지? 쉽게 말하면 인권위는, 성적이 좋은 애들만 자율학습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헌법 제3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한 거야.

인권위는 또 결정문(김민아,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끌레마, 2010)에서 ‘교육의 기회에 있어서의 평등권 침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교육의 기회에 있어서 평등이란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말하고, 이때 능력이란 단지 국영수의 시험성적이 아니라 교육 대상인 학생의 다양한 잠재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잠재적인 능력에 맞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시험 성적이 낮다고 해서 그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슬아, 과연 그럴까? 학교에서 전교 30등 안에 드는 애들만 따로 모아 그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학습실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 열심히 했으니까, 그만한 대가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친구들만큼 노력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은 다른 친구들을, 그 성적이 좋은 친구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슬아, 너는 이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오빠랑 헌법 조문을 한 번 볼까? 평등권에 대한 조문이야. 조금 어렵겠지만, 같이 찬찬히 읽어보자. 더불어서, 헌법적 권리의 제한의 경우를 규정한 헌법 제37조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 그 두 조문이 헌법상 기본권에 관한 분쟁 사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거든. 그리고 인권위 결정에 나온 헌법 제31조 제1항도.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합니다. 누구도 성별, 종교 또는 사회의 신분에 의해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요.
제2항 사회적 특수계급 제도는 있어서도 안 되고, 만들 수도 없어요.

헌법 제3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져요.

헌법 제37조
제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아도 보장되지요.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어요.

슬아, 헌법조문을 읽어보니 어때?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지? 슬아, 어른들이 하는 일들이 뭔가 쉽지 않아 보이고, 법률과 헌법이라는 것, 헌법재판소의 판례 같은 것들이 청소년들은 알기 어려운 무언가 대단히 먼 것들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헌법과 법률은 성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야. 너와 네 친구들, 청소년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거야. 그리고 오빠는, 행정법 용어처럼 전문 용어가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학생도 충분히 헌법재판소 판결문들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조문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헌법은 제11조에서 남녀차별을 비롯한 차별에 대한 금지를 대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어. 헌법 제31조는 이러한 평등원칙을 교육의 영역에서 실현하는 조항이고. 방금 본 인권위 결정도 평등원칙 침해를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런데 이런 평등권을 포함한 여러 헌법적 권리들도, 국민 개개인이 무한히 향유할 수 있다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헌법은 제37조 제2항에서 국가가 나서서 그 헌법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해 두기도 한 거야. 곧,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이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본질적인 것은 절대 침해할 수 없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규정이 실제 헌법재판소 판결문에는 아주 많이 등장한단다. 항상 염두에 두자꾸나.

인권위의 결정문을 다시 볼까? 인권위는, 학교에서 면학실을 만들어 국영수 성적이 전교 30등 안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은 못 사용하게 한 것은, 균등하게 공교육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제31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거야.

헌법 조문을 가지고 생각해 볼까? 이 학교에서 면학실을 만든 것은, 거기에 못 들어가는 학생들에게는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라는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제한은 헌법 제37조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곧, 그 제한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조문에 써 있는 대로,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가 법률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전교 30등 안에 드는 아이들만 면학실 만들어주는 것은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솔까말, 그냥 애들 서로 경쟁시키려고 그렇게 한 거 아님?

이렇게 법조문에 비추어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이 바로 법률해석학(법학)의 관점이란다. 슬아, 만일 저 학교 고등학생들이 모두 이 조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학교에서 ‘감히’ 그런 ‘헌법상 기본권을 근거 없이 침해하는’ 일은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만일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하나 알고, 학교와 사회의 자신들에 대한 ‘정책’들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가며 말할 수 있다면, 훨씬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오빠는 그런 생각이 들어.

이제는 ‘자격증 가진’ 몇몇 사람들만 법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책과 법률의 적용 대상으로만 이해되어 온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해석과 적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른바 ‘법률 해석의 민주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특히 ‘헌법’은 더욱더, ‘헌법 해석의 민주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참에 우리 평등권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까?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서울대 법과대학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참여 동아리(안양고 NGO-E) 활동을 하며 청소년인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후 대한민국 청소년의회 부의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장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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