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28]

▲ 우리 신랑이 쪼그리고 앉아서 모를 심고 있다. 작고 비실비실한 모를 딱 세 포기씩 추려, 아주 정성스럽게 땅에 꽂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세월을 낚는 신선 같다. ⓒ정청라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철이 돌아왔다. 논마다 물이 그득 차고, 그 논에 모가 폭폭 꽂히면 내 마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메말랐던 가슴에 생명의 기운이 쫙 번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누군가 내게 농사일의 백미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모내기라고 말하겠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허리가 꼬부라질 만큼 모를 안 심어봐서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골에 산 지 어느덧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사실상 내가 모내기를 제대로 해본 경험은 없다. 코딱지만 한 땅에서 장난치듯이 모내기를 해본 게 다고, 신랑이 모내기를 하면 거드는 척한 게 다다. 게다가 올해는 둘째 아이까지 있으니 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했다. 당연히 모내기는 오롯이 신랑 몫, 그런데도 이 사람 기가 막히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바로 맨땅에 모내기! 논을 갈지 않고 물만 댄 상태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겠냐며 걱정하는 내게 신랑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우리 논은 수렁논이라 논을 갈면 오히려 모 심기 힘들어요. 지난해 해봐서 알겠지만 모가 떠버리기 쉽잖아요. 풀 때문에 걱정이긴 한데 호미로 매면 되니까.”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까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믿고 맡겼다. 어차피 내가 거들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논을 안 가는 방식이 성공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 물론 모 심을 때 손끝으로 땅을 파가며 모를 꽂아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훨씬 수고롭기는 하겠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서서 말릴 수도 없었다. 그저 격려하며 지켜보는 수밖에.

▲ 다울이는 괴짜 아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울이를 보며 다울이가 아빠의 뚝심 하나는 빼닮았으면 싶다. 그래야 이래라 저래라 하는 세상에서 제 길을 갈 수 있지 않겠나.ⓒ정청라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야단이 났다. 모내기 전에 땅을 두 번 이상 가는 것은 상식, 아니 철칙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무시하고 있으니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끝집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며 찾아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이가 신랑 못 이기요? 고집이 쎄도 쎄도 그렇게 쎈 사람은 첨 보네. 어쩌려고 논을 안 갈고 모내기를 한디야? 그래가꼬는 나락 못 먹어. 땅을 안 갈면 곡식이 뿌리를 못 내린당께. 논을 갈아준다고 해도 마다 하니 답답해 죽겄어. 집이 신랑은 뭣땜시 고생을 사서 한다요?”
수봉 할머니는 짠해 죽겠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녁 나절에 모 좀 심어줄게. 옆에서 보고 있으니 애가 타서 죽겄네. 우리 못자리도 도와줬는디 나도 손 좀 보탤게.”

도대체 모를 어떻게 심고 있기에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야단인가 싶어서 애들 둘을 데리고 신랑이 모를 심고 있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둑새풀이 무성한 논 한가운데서 쭈그리고 앉아 모를 심고 있는 게 아닌가.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앉아서 심으니까 허리 숙여 서서 심을 때보다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둑새풀이 많은데 안 매도 되냐고 했더니 둑새풀은 곧 시드니까 맬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랴. 남들 보기에는 고행인데 본인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한없이 한가로운 마음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내가 먹는 밥 한 알이 지극한 도의 결정체란 생각이 드니 신랑에게 고마울 수밖에.

이렇게 모를 심으니 600평 남짓 되는 논에 모내기를 마치는 데 보름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 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언제 다 마칠까 싶어 한숨이 푹푹 나오고 답답한데, 어느덧 절반 이상 심고 앞으로 닷새 정도 뒤면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사부작 사부작…, 하여튼 대단한 사람이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 신랑은 바보 아니면 도인이 분명하다. 하느님도 이 사람의 아름다운 몸짓을 보시면 풍년 들게 안 해주시겠나. 아니, 그냥 우리 식구 먹고살 만큼만 주시면, 찾아오는 손님에게 선물로 조금씩 나누어줄 만큼만 주시면, 더 바랄 게 없다. 큰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래 살아도 좋고 저래 살아도 좋으니, 남들이 뭐라 한들 다 괜찮고 말고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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